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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종종 무기력감이 밀려올 때면, 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공간은 어떤 곳인지 무척 생소하게 다가온다. 늘 깊이 있는 생각보다 일상의 진부함에 짓눌려 한 며칠 방황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종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나에게 종교가 없었다면 진작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할 때면 현재에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이런 생각이 밀려들 때면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답 없는 질문을 또 다시 하게 된다.
분명 이런 생각은 20대 초반에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세상으로 나가려고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호락호락하진 않겠지만 노력과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모한 행동을 몇 가지 하고 난 20대의 초반은 순식간에 지나버려 벌써 서른을 앞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는 것이 때론 두렵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내가 보낸 20대는 여전히 나의 내면에 남아있다. 세세한 감정은 아닐지라도 어렴풋이나마 세상을 향해 품었던 생각들이 날을 세운 채 내면을 맴돌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서모싯 몸의 <면도날>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리노이 주의 시골에서 살고 있던 래리는 젊은 시절의 혼란스러움을 잘 보여주었고, 보통 사람들이 청춘의 과도기쯤으로 여기는 도약을 래리는 온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이 책의 배경은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 까지 아우른다. 전쟁터에서 겪은 일 때문에 래리는 인생의 전환점을 맡는다. 비행기가 좋아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하지만, 자신을 구하고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친구를 보고 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이라는 것이 철저히 주관적이고, 자신과의 싸움이었기에 래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답답하기만 했다. 죽음을 목격한 사건을 쉽게 간과할 순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치열함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아간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약혼자, 친구, 후견인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래리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답을 위해 10년 이상을 방황한다. 그것이 방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철저히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므로 독자도 물론 포함된다. 그럼에도 래리는 자신의 내면을 사로잡는 '무엇'을 위해 타인이 말하는 안락한 삶을 좇지 않는다.
약혼녀 이사벨은 그런 래리를 무척 사랑했지만(래리가 그녀를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래리가 무언가를 찾아서 여러 곳을 떠돌자 그와 파혼한다. 사랑만으로 래리를 선택하기엔 그녀가 누리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안락한 삶을 원했던 그녀는 래리의 친구인 그레이와 결혼한다. 후일에 대공황으로 인해 파산해서 외삼촌이 마련해 준 거처에서 지내면서 래리가 말했던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을 경험하지만, 그런 그녀라도 래리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둘을 어떤 식으로도 비난하거나 안타까워 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코드가 안 맞았다는 것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래리에 대한 이사벨의 욕망은 때론 질투를 부르고, 그를 소유할 수 없다는 갈망에 불타지만 래리는 이사벨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찾는데 열중 할 뿐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 래리의 수기처럼 엮어지는 <면도날>에서는 저자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저자가 래리와 이사벨, 그레이, 그 외의 수많은 인물들을 알게 된 것은 상류사회에 목숨을 거는 엘리엇을 통해서였다. 래리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많은 사람들도 등장시키고(저자 자신까지), 그가 얽혀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소식을 듣는 만큼 여러 사람의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통해 소설을 완성해간다. 그런 과정이 복잡해 보이기도 했는데, 서술적인 느낌과 소설적인 요소를 잊지 않으려는 저자의 역량 덕에 비교적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래리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두 가지의 극단적인 느낌으로 나눌 수 없었던 것은 저자의 입을 통해 한 번 걸러진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표현력의 부족함을 종종 토로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래리의 이야기를 충실히 옮겨 놓는다. 그 안에서 래리는 자신의 소신대로 유럽과 아시아를 누비며 자신이 찾고자 하는 삶과 죽음, 선악, 신 등의 해답을 향해 나아간다.
래리가 소설의 토대에 선 인물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소설을 채워주는 독특한 인물들은 많았다. 미국인이면서 프랑스 상류사회에 진출해서 사교계 파티에 참석하고 유명 인사를 사귀기 좋아하는 엘리엇 템플턴이 그 중 한 사람이다. 엘리엇을 통해서 그의 성품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상류사회는 적나라하게 비춰졌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가식과 허위의식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보여주었다. 이사벨의 외삼촌이기도 한 엘리엇은 래리와의 결혼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래리의 행동을 일절 이해하지 못했다. 래리의 행동과 내면을 이해하기란 녹록치 않았으므로 조언자이면서 관찰자이기도 한 저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그럴 생각도 없었으므로). 래리는 주변의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오랜 시간을 떠돌다 인도에 가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찾고자 한 해답을 위해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수양도 하고 긴 여행도 했지만 인도에서 한 현자를 만나고 자신이 본 환상같은 현실로 인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래리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지만 그가 세상을 떠돌며 찾고자 했던 것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수긍이 갔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래리에게 색다른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나의 눈에도 래리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여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인의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래리는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인간 중 하나였음을 인정한다. 자신의 내면의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내면의 모습이 겉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이 래리였다. 모두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살다가 파리에서 반갑고도 어색한 재회를 하지만(래리,그레이,이사벨,소피), 결국 소피만 빼고 셋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래리와 이사벨 부부의 삶은 완전히 달랐고, 이사벨이 래리에 대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 간직할지도 모른다. 래리의 일대기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진 않지만, 래리가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를 옮길 정도로 그의 가치는 충분히 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타인의 인생이라고 하기엔 무시할 수 없는 비상함이 느껴지고, 그를 동경하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나의 내면에는 어떠한 생각이 굳혀지기보다 무수한 생각들이 그냥 흘러 다녔다. 래리처럼 나를 뒤집어 놓는 사건도 없었고(있었다 해도 그 충격을 오래 간직하기엔 나의 내면은 너무 물렁거린다.), 그가 갖는 생각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 해도 래리처럼 행동하고 사고할 순 없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래리의 삶에 약간의 동경이 이는 것은 무엇일까. 어리석을 정도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에 열정을 건 그의 용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 뚜렷하게 말할 수 없지만, 책을 덮었음에도 래리란 인물은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동안 래리와 몇몇 인물들이 나의 뇌리에서 떠날 것 같지 않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라고 했던 우파니샤드처럼 래리가 좇고자 했던 세계를 넘기는 나 역시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