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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요즘, 청소년 문학이 너무 좋다. 청소년에 관한 책을 보면서 마치 내가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된다. 이 책도 나오자마자 관심이 갔다.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국외문학에 치우쳤던게 사실이었고, 이번 계기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제목까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남들처럼 심하게 공부에 치여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의 양이 다를 뿐, 분명 나를 괴롭히는 요인 중의 하나였고 내면으로 치열함을 달고 살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고뇌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다 성적에만 열을 올리고, 자신이 정해놓은 길로 자녀가 가야만 안심이 되는 부모는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책 속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고뚱땡 은비, 꽃미남에 사족을 못 쓰는 지형, 꼬마라고 하면 까칠함이 극에 달하는 소울, 예쁘고 착하지만 머리가 텅 빈 혜지까지 네 소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발랄하면서도 처절했다.
은비는 의대에 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견뎌내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 '모란반'에 속해 있지만 은비가 하고 싶은 것은 연기였다. 살이 찌기 전에 연기 학원을 다녔고 재능도 있었다. 그러나 살이 찌고 부터는 그 꿈을 접어야 했고, 은비 엄마도 의사를 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지형이도 '모란반' 이었다가 성적이 떨어져 짤렸다.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지형이를 부모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형은 그야말로 꽃미남만 봤다 하면 사족을 못쓰고, 근처의 남고의 얼짱 팬클럽에 가입해서 활약을 할 정도다. 10년만에 소울을 얻었다는 부모는 소울을 아기 취급 했고, 키가 작아 '꼬마'라고 놀리면 은비에게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 까칠하고 정의에 불타는 아이다. 혜지는 성격도 좋고,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좋고, 집도 부자인데 반에서 꼴지다. 각각 다른 이 네 아이들은 학교 생활과 자신들의 고민, 그리고 세상과 어우러져 가는 모습을 은비의 시선을 통해 그려 나간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일상은 어쩌면 여고생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그 아이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물론 자녀가 잘못 되라고 나무라는 부모는 없겠지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기에는 아이들에겐 각자의 꿈이 있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희망차야 했다. 그랬기에 연기자를 꿈꾸는 은비를 힘껏 도와주는 다른 친구들은 그런 은비만큼이나 자신들이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 외모 때문에 힘들어 하고, 성적에 민감한 엄마와 맞서야 하는 은비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혜지네 외삼촌이 영화감독이었고, 혜지와 친해지면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고 친구들이 설득한 것이다. 혜지의 부모는 혜지가 반에서 30등을 못하면 미국으로 보내버린다고 협박했고, 혜지의 공부를 도와주며 외삼촌을 만나려는 은비, 혜지의 꽃미남 동생 영민을 보려는 지형, 혜지네에 구비된 영화 DVD를 보려는 소울까지 각자의 목적은 충분했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연극 오디션을 보고 온 은비는 남들이 비판하던 외모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합격한다. 그런데 공연과 '모란반' 수업이 겹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 은비를 돕기 위해 아이들이 마련한 방법이란, 바로 모란반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이 처음 간구한 방법은 귀신소문을 내서 아이들을 해체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닌자 모습으로 분장하고 옥상에 오른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던 그들은 경찰과 부모까지 출동하는 사태에 맞서면서도 당당히 자신들의 요구를 말한다. 그 뒷일은 감당하기 힘들지라도.
네 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혹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부인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것처럼 내면 묘사가 좋았고, 거기에 재미를 가미했다. 각자의 개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세상과 맞서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시선에서 비춰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성장소설에서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계속 성장중이므로 어느 정도 모습을 비춰줄 수는 있어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내면과 외적인 면이든) 결론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재미 위주로만 치우지는 모습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에서 충분히 아이들의 고민과 그들 눈에 비춰지는 학교와 세상의 모습을 잘 그려넣었지만, 조금 더 무게있고 여운을 남겨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발랄함이 아이들에게 부족한 요소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부에 억압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청소년들이 동화될 수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미 유년시절을 넘겨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이 또래의 아이들이 읽으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비슷한 또래의 내면을 그려내는 책들보다 시험 문제에 나오는 책들을 읽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내면을 대신할 수 있는 청소년 문학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책으로나마 자신들의 모습을 고민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