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3 -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바쇼의 하이쿠 기행 3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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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의 계절 여름에는 많은 것들이 나를 현혹한다. 여행 책에서부터 쇼핑, 휴가 계획,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까지 그야말로 한 없이 들뜨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미 휴가는 수련회로 정해져 버렸고, 읽을 책은 책장에 가득이며, 쇼핑도 오래전에 다 한터라 무엇 하나 기댈 것이 없는 요즘이다. 여행 책을 읽어봤자 마음만 들뜰 테고, 여름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여름의 한창을 지나고 있는데 마음이 이유 없이 들뜬다면 차분히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리만족이나 하자 싶어 좀 특별한 여행 책을 읽어보고 싶어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펼쳤다. 1, 2권은 읽고 3권을 읽지 않아 늘 마음에 걸렸는데, 충분한 계기가 되어 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에는 이 책을 하이쿠 시집으로만 생각했다가 점차 하이쿠가 가미된 기행문으로 시선을 넓혀갔다. 1권에서는 낯섦과 주석 때문에 힘들어 했고, 2권에서도 1권의 행보를 이어가느라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3권을 읽을 시점이 되자 그제야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바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여행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바쇼가 하이쿠 기행을 하게 된 목적과 여행한 장소들도 꼼꼼히 살피며 읽어도 좋지만, 말 그대로 '하이쿠 기행'에 중점을 두며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바쇼는 기행을 하면서 하이쿠와 간단한 글로 기록을 남겼지만, 스스로도 기행문을 왜 써야 하는지 생각하며 여행을 했다. 평범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며, '저 중국의 시인 황산곡이나 소동파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진기함과 새로움이 없다면 기행문은 쓰지 말아야 하리.'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글과 하이쿠에 딸린 주석을 보며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말이었다.

 

  빈 몸으로 나서 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쿠에 기초를 둔 여행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따라줘야 한다. 건강부터 여행의 여정 과정에 담긴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도 바쁠 터인데, 하이쿠 시인으로써 근본정신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계절에 민감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쇼는 '하이쿠에 몸을 두는 사람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친구 삼아, 그것을 시로 표현해 간다.' 라고 말했듯이 여행을 하는 동안 하이쿠 시인으로써 사명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일까. 바쇼의 하이쿠를 살펴보면 그런 의미가 들어간 하이쿠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 안에 아름다움은 물론,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또 다른 의를 가미하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1, 2권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주석이 3권에서는 큰 도움이 되어 바쇼의 기행을 편히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 기행문은 바쇼가 1687년 음력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정도의 여행을 소재로 쓴 하이쿠 여행기라고 한다. 그가 아끼던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도코쿠를 위로 차 방문하는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고 한다. 막상 제자를 찾아가서 여행의 쓸쓸함을 달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인간미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혼자 하는 여행의 쓸쓸함이 잠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여행을 다녔지만, 종종 밀려오는 자질구레한 걱정들과 고독감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그날의 소운 두 가지가 있을 뿐. 오늘 밤 좋은 숙소를 빌릴 수 있었으면, 그리고 짚신이 발에 맞았으면 하는 것.' 이라고 말하며 소박한 여행을 하는 그를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일 년에 한 번뿐이라는 생각에 고생해서 일했음에도 호화 여름휴가를 꿈꾸는 요즘 시대에, 이런 두 가지만 바라며 여행하는 바쇼가 훨씬 더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한없이 들떴던 마음은 바쇼 따라 나선 기행으로 인해 많은 위로와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되었다. 차분한 여행도 독자에게 충분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하이쿠와 어우러진 기행문은 문학적인 매력도 잃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구절절한 기행문이었기에 바쇼가 머무르는 곳마다 기록을 남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후 4년이 지난 1691년쯤 집필 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원고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제자 오토쿠니에게 맡기고 에도로 돌아갔지만, 1694년 바쇼가 죽은 후에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것을 1709년 오토쿠니가 간행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오는 바쇼의 하이쿠 기행은 덧없이 왔다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신분을 뛰어넘어 하이쿠를 나누는 모습에서 훨씬 더 많은 의의를 둔 하이쿠 기행이었다.

 

  거기다 부록까지 꼼꼼하게 챙겨준 옮긴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명이 없이는 옮기기 힘든 책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바쇼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책에서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알고 나서 읽어보려 했지만, 절판이 된 상태였는데 다시 재출간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제 3권을 모두 읽음으로써 마치 내가 하이쿠 기행을 마친 기분이다. 그가 남겨준 하이쿠가 내 마음 속에 남아, 에도시대를 살았던 바쇼와 나를 엮어 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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