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식탁 - 시간을 담은 따뜻한 요리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타샤 할머니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었지만, 유독 <타샤의 식탁>만큼은 망설여졌다. 요리에 젬병인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타샤 할머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와는 거리가 먼 책을 읽을 이유 또한 발견하지 못해서였다. 그렇게 구입을 망설이고 있을 때 타샤 할머니에 관한 읽을거리가 떨어져 가고 있었고,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열정이 극에 달할 때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역시 구입을 해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요리 방법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을 어떻게 읽기로만 끝낼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사항이었다.
 

  그러다 타샤 할머니 1주기를 기념해서 큰 딸 베서니 튜더가 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읽을거리가 사라져 버렸다. 책장에 남아있는 <타샤의 식탁>이 떠올라 여운을 이어가고자 펼쳤건만 여전히 헤맬 수밖에 없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레시피가 실려 있더라도, 요즘 같이 사진 찍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방법만 채워진 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도 종종 낡은 요리책을 발견해서 알게 되거나, 어머니나 유모에게 배운 요리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런 의의만으로도 특별한 요리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타샤 할머니를 깊이 사모하지 않고서는 읽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샤 할머니의 요리책에는 다양한 요리가 실려 있었다. 에피타이저, 수프, 빵, 주요리, 곁들일 요리, 음료까지 그야말로 타샤 할머니가 알고 있는 요리들이 총 동원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이 확실히 특별한 이유는 요리 방법이 주류이긴 하지만 요리마다 얽혀있는 추억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요리 방법만 읊어댔다면 타샤 할머니가 알려 줬다고 해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책에서 들어온 이야기들이 요리에 초점이 맞춰 있었기에 먼저 그런 추억을 떠올린 후, 요리 방법을 읽으며 타샤 할머니가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요리에 큰 관심이 없어 요리방법은 술렁술렁 읽고 넘어갔지만, '요리와 정원 가꾸기에 대해서 겸손을 모른다.'는 타샤 할머니의 말처럼 찬사와 감탄이 잔뜩 들어간 요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는 나와 국적도 생활방식과 문화도 다르기에 책에 실린 요리방법은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나를 절망시켰던 것들 중 하나는 타샤 할머니가 쓰는 요리재료와 주방기구들이었는데, 가까운 우리 집만 해도 도무지 일치되는 것이 없었다. 꼭 타사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이 요리책인 만큼 한 가지쯤은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두 생소한 재료에 조리 기구라곤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밖에 없는 실정이라 무얼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나를 떠난 상태였다. 거기다 가끔 김치찌개 하나만 끓여도 재료 다듬기와 끓이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식한 터라 맛있는 음식을 위해 그만한 수고로움과 시간을 투자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요리는 8시간씩 구어야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타샤 할머니라면 느긋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살펴보겠지만, 가스레인지에 물 주전자 하나만 얹혀 있어도 안절부절 못하는 나이기에 그런 인내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이 책에 담긴 조리법을 모두 시험해준 친구 캐롤 존스턴도 타샤 할머니만큼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타샤 할머니의 추억 속에 담겨진 요리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맛을 상상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음에도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코기들과 고양이들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걔네들은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충분히 맛보면서 커갔다.). 타샤 할머니가 워낙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으니 거기에 굳이 나를 대입시켜 비교할 필요가 없으므로(배교 대상도 되지 않을 뿐더러), 그냥 즐기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요리법이 쓰인 글만으로 심심하기도 하고, 상상력이 바닥날 때쯤 중간 중간에 등장한 타샤 할머니의 그림은 많은 추억을 실어다 주었다. 타샤 할머니가 들려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 삶이 나에게 그대로 추억이 되듯이, 타샤 할머니의 그림 한 장으로 그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이때쯤 이런 요리가 있었겠다 싶어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채워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음식점에서 비슷한 음식을 맛볼 기회는 있겠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타샤 할머니의 요리를 따라한 분의 짤막한 글과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분도 재료를 구할 때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경험 또한 특별하고 흥미로웠다고 하니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타샤 할머니가 요리를 통해 주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직접 기른 야채들로 요리하는 기쁨, 정성들여 한 요리를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대접하는 마음. 그 과정 속에 타샤 할머니는 일상의 행복을 맛봤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음식을 통해 인생의 작지만 큰 기쁨을 전해주었다. 그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나에게 요리 솜씨가 없다면 다른 것으로라도 기쁨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보기를 조심스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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