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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6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ㅣ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2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나 완결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6권을 읽기만 하면 모든 이야기가 꿰어 맞춰진다는 흥분 때문에 다음 권을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리뷰를 썼다. 읽은 내용을 정리를 해야만 다음 이야기를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6권을 손에 쥐니 1권부터 펼쳐졌던 내용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4권부터 조금씩 진부해지는 흐름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다짐하고 6권을 펼쳤건만, 결말을 읽고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책장을 '탁' 소리 나도록 덮어 버렸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렇게 책이 끝나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만 자꾸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옮긴이의 글을 읽어봐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해 보아도 다음 권이 나온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것이 결말이라는 말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6권의 책을 읽어 온 보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닛타히가시 중학교와 요코테 중학교의 경기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경기로 부상했다. 다쿠미의 실력을 보여 줄 기회를 더 큰 대회에서 만날 거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여서 요코테와의 경기에서라도 다쿠미와 고의 실력을 충분히 보여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경기를 기다리며 나 또한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기가 열렸고, 다쿠미와 가도와키의 승부는 물론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소설은 멈춰 버렸다. 그리고 다쿠미가 어떤 공을 던졌는지, 가도와키가 어떤 공을 쳤는지 끝끝내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열린 결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더 많이 남겨주고, 각자의 생각에 또 다른 모습으로 각인시키는 것이야말로 소설을 쓰는 사람의 보람이 아닐까란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배터리>의 결말 앞에서는 열린 결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쿠미가 소속된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는 요코테와의 경기를 무척 진지하게 준비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 열린 만큼, 3년 동안 야구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졸업생들에게는 중학교의 마지막 경기이자(가도와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올려보기 조차 힘들었던 요코테 중학교와의 중요한 경기였다. 요코테 중학교는 닛타히가시 중학교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비교도 안 되는 팀이었지만, 다쿠미의 존재로 이미지는 확 바뀐다. 다쿠미의 공을 본 사람이나, 타석에 서 본 사람은 위력을 알기에 꼭 승부를 가르고 싶어 했다.
그 과정은 5권에서부터 진부할 정도로 언급이 되었었다. 요코테의 가도와키 뿐만 아니라 최고의 팀이라 자랑하던 다른 선수들도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다쿠미에 대해 닛타히가시의 야구부에 대해 재조명하게 된다. 가도와키의 승부욕이 다른 선수들을 부추기기도 하고, 질투의 시선을 만들기도 한다. 가도와키의 절친한 친구였던 미즈가키는 가도와키와 다쿠미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품게 된다. 시샘과 승부욕이 범벅된 감정은 폭발하기도 하고, 안 좋은 방식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다쿠미와 고에게도 미즈가키의 위험한 행동이 영향을 끼칠 뻔 했지만 나름 잘 이겨낸다. 한편 닛타히가시 야구부는 중요한 경기인 만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새로운 주장, 조금씩 보강되는 수비, 각자의 개성이 잘 어울리는 팀워크를 내세워 요코테에게 결코 뒤떨어진 팀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지금껏 다쿠미와 고에게만 의지해 경기를 이기려 해왔다면, 요코테와의 경기를 준비함으로써 야구부는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다. 다쿠미와 고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생긴 어려움을 역으로 이용해 다양한 선수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두 팀은 많은 준비를 했고,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다쿠미와 고가 여전히 삐걱대기도 하고, 풀릴 듯 말듯 시원스런 감정의 솟음이 없는 가운데 아주 조금씩 둘은 서로를 알아간다. 그 느낌이 확실하지 않을 때에 두 팀의 경기는 진행된다. 선수들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오래 기다렸기에 그 경기가 무척 긴장되었다. 그러나 다쿠미와 고, 가도와키의 승부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에 저자는 쓰기를 멈췄고, 아무리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아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미트, 돌아간 배트만으로 경기를 가늠하기엔 너무 허무했다. 팽팽한 경기인 만큼 쉽게 써내려갈 수 없을 거라 짐작했지만, 열린 결말이 아니라 그 상황을 저자가 도피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구에 얽힌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4권부터 매끄러운 흐름은 무너져 버렸고 결말에 와서도 썩 내켜할 수 없었다. 충실한 과정을 보여주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는 것은 맞설 자신이 없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고 많은 생각들을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작품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읽기 직전의 느낌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배터리>는 느낌이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겨진 결말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미쳐 독자에게 그려주지 않은 모습에 많은 가능성을 품고,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해도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맞아 떨어지는 메시지가 없었다. 성장과정, 야구에 대한 열정, 야구로 인해 삶을 배워가는 아이들이란 메시지는 채 그려내지 못한 결말과 잘 어우러지지 못했다. 그 사실이 아쉬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는 내가 감정에 치우쳐 버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과 함께 한 과정 속에 너무 큰 경기로 각인된 경기여서 이렇게 푸념을 해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은 여전히 중학생으로 남아있고, 아이들이 펼쳐낼 가능성과 좌절과 성장과정은 여전히 채워질 수 없다. 책에서 마련해준 결말의 상태를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그들에 대한 이미지를 나 또한 변화시킬 수 없음에 망연자실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