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ㅣ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만나는 뱀파이어 소설이다. '트와일라잇'을 읽고 심한 후유증을 앓았음에도 '뱀파이어' 소설이라고 하기에 또 다시 혹하고 말았다. 분명 '트와일라잇'에서 만난 뱀파이어와 이 책의 뱀파이어가 같을 수 없음을 알고, 내용이 다를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다른 로맨스를 꿈꾸었다.
일명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절반정도 읽다가 제대로 읽으려면 전편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를 구해 읽었다. 시리즈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 배경지식이 쌓여 후편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에(책을 읽는 내내 뼈저리게 느낀 것도 있었지만) 절반 읽은 후편을 잠시 덮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간단한 소개를 보면, 인간과 뱀파이어가 사랑에 빠지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트와일라잇>과 무척 흡사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트와일라잇> 같은 로맨스를 상상했다. <트와일라잇>에서는 뱀파이어 에드워드가 사람의 마음을 읽지만 여주인공 벨라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이 책에서는 인간인 수키가 사람 마음을 읽고 뱀파이어인 빌의 마음을 못 읽는다는 차이에도 말이다. 오히려 <트와일라잇>과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는 묘미로 두 소설을 비교하며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소설 자체가 비교 된다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뱀파이어가 나오고 인간과 사랑에 빠지며, 소소한 공통점이 드러난다고 해도 뱀파이어와 인간이 엮이는 배경 자체가 달랐다. 거기다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와의 로맨스에 중점을 둔 대신에,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뱀파이어와의 현실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관에서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합성혈액을 마시며 인간의 세계에 공식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도 있고, 형성되어 가는 의식의 변화도 느껴지지만 상대의 마음을 읽는 수키에게는 뱀파이어 '빌'의 존재가 구원투수나 마찬가지였다. 마음의 방어벽을 친다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읽히는 이상 데이트도, 일상생활도 불가능 할 정도였다. 바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친 수키는 괴상한 여자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이 읽혀지지 않는 빌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숨통이 트였겠는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거슬리긴 해도 수키에겐 완벽한 사람(죽은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위기에 처한 서로를 구해주며 시선을 좁혀가던 그들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낮에는 빌이 활동을 할 수 없기에 밤에만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수키에게는 어느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었다. 인간과 뱀파이어라는 사실자체만으로도 많은 문제점이 따르는데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모두 젊은 여자였고, 뱀파이어와 사랑을 나눈 적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수키도 살인마의 표적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살던 할머니를 잃는다. 자기 대신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를 보면서도 수키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빌이 옆에서 지켜주고 있었지만, 계속 좁혀오는 살인마의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약간의 스토리만 보자면 로맨스가 아닌 스릴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키와 빌의 관계만 보자면 로맨스가 묻어나지만, 그 외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저자는 독자에게 다양한 재미를 재공 해준다. 판타지, 스릴러, SF적인 요소를 두루두루 드러내는 소설을 읽노라면 그런 내용에도 불구하고 너무 현실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쉼 없이 사랑을 나누는 수키과 빌의 적나라함, 뱀파이어와 인간이 얽힌 타락, 살인사건 등등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모습이 많았다. 쉼 없이 넘어가는 책장과 현실감이 뚝뚝 흐르는 글의 위력에는 감탄 할만 하지만 개인적으로 탐탁치않은 부분이 많았다. 뱀파이어에 대해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 어떤 것이 진정한 뱀파이어 모습인지 알 수 없어도 인간과 얽혀있는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뱀파이어의 새로운 행보, 수키의 남다른 능력, 그 능력으로 인한 굵직한 사건과의 연결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독자 각자의 개인적인 성향이 갈리듯이 읽어가는 과정이나 읽고 난 후의 느낌 또한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게 되는 소설이었다.
순탄치 않은 과정으로 인해 수키는 자신의 할머니와 고양이를 죽이고, 친 오빠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범인이 밝혀진다. 수키는 빌과 사랑에 빠진 것도 감당해야 했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원하는 다른 뱀파이어들로 인해 힘든 시간을 거쳐 왔다. 그러나 수키의 시련과 그에 상응하는 남다른 행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인 만큼 수키와 빌의 사랑, 인간과 뱀파이어의 관계에서 얽히는 수많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올 것이다.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좀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전편을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트와일라잇>이 틴에이저의 로맨스에 가깝다면,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성인 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성인 판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나를 보며 아직 성장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며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