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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ㅣ 네버랜드 클래식 11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타샤 투더 그림,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에 궁금했던 <비밀의 정원>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타샤 할머니의 삽화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보니 타샤 할머니가 이 책에 삽화를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타샤 할머니가 30만평이나 되는 정원을 가꿨으니 <비밀의 화원>에 묘사된 정원을 그려낼 적임자로 타샤 할머니만한 사람이 없다. 어쩌면 <비밀의 화원>에서 뿜어내는 마법과 생명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타샤 할머니가 가꾼 현실에 존재했던 마법의 실재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 살 소녀 메리는 전염병으로 인도에서 부모님을 잃는다. 천애 고아가 된 메리는 영국의 요크셔 미셀스와이트의 고모부 집으로 오게 된다. 고모부 집은 무척 넓지만 메리의 처지보다 더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모부는 만날 수도 없었고, 자신의 비유를 다 맞춰준 하인도 부모도 없는 메리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메리가 제멋대로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미셀스와이트 장원에서는 자신의 짜증조차도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하녀 마사가 있었지만, 시킨 대로 모든 것을 하거나 메리의 비유를 맞춰주는 것이 아닌 심한 요크셔 사투리로 메리를 나무랐다. 하지만 마사는 메리를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마사의 충고에 따라 뜰에서 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다 보니 메리의 내면에 긍정적인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메리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모의 죽음 때문에 고모부가 음울하게 변해 버렸고, 고모가 좋아했던 정원은 10년 동안이나 굳게 닫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메리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베일에 싸인 정원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정원사 벤 웨더스타프 할아버지의 친구인 붉은가슴울새의 이끌림으로 정원과 정원의 열쇠를 찾게 된다. 그때부터 메리의 일상은 달라진다. 미셀스와이트 장원에서 특별한 일이 없었던 메리는 그 정원에 몰래 들어가 정원을 꾸미기로 한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마사의 동생 디콘과 함께 정원을 가꾼다. 디콘은 동물과 식물에 대해 해박했고, 순수하고 착했다. 황량한 비밀의 정원과 메리의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 넣어 준 사람이 디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밝고 건강한 아이었다.
디콘과 함께 비밀리에 정원을 가꿔가던 메리는 한 밤 중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 울음소리를 따라 가니 병약한 아이가 신경질 적으로 울고 있었다. 그는 바로 동갑내기 사촌 콜린이었고,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히스테리가 심한 아이었다. 메리는 디콘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콜린을 위로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그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콜린에게도 자신처럼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비밀의 정원에 대해서 털어 놓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택에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콜린은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터라 메리의 회유는 달콤하기만 했다. 그때부터 콜린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부터 지워 버리고 메리가 들려준 정원과 디콘에 대해 들으며 자신도 건강해 질 수 있다 생각한다. 그렇게 콜린이 비밀의 정원에 오게 되고 메리, 디콘, 콜린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간다.
콜린은 자신이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을 외면하고 사랑해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메리가 경험한 자연과 함께 할 때의 긍정적인 사고와 건강은 콜린에게도 전염되고 있었다. 그때까지 비밀의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건강해지기 위한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비밀리에 붙여졌다. 세 아이들은 몇몇 어른들이 도움으로 비밀을 지킬 수 있었고, 마침내 콜린은 아버지와 맞닥뜨린다. 방황하던 아버지도 콜린을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고, 콜린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건강함을 보여주고 싶었으니 그 만남이야 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었다.
그렇게 죽어가던 정원은 다시 살아나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생명력이 넘쳐나는 화원이 되었다. 콜린의 엄마가 무척 사랑했고, 죽어갔던 그곳에서 메리와 디콘, 콜린으로 인해 다시 살아났다. 미운 아이였던 메리가 변화하고, 콜린과 콜린의 아버지까지 변화하게 만들었던 것은 비밀의 화원 같은 자연의 힘이었다. 자연 속에서 온 마음을 풀어놓다 보니 마음속의 병이 치유되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다보면 어느 누구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비밀의 화원은 내 머릿속에서도 제 모양을 갖춰갔다.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생소한 꽃들과 억센 요크셔 사투리를 보고 있노라면 '번역에 큰 힘을 쏟았구나' 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섬세한 번역이 없었다면 줄거리 위주로 치우쳤을 테고 독자들에게 자연의 경이로움과 건강함을 선사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요크셔의 황량한 황무지는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황무지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이면을 발견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껴가는 것은 메리뿐만이 아니었다. 도심 속에 갇혀 자연과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셀스와이트의 장원은 그야말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해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 속에도 수많은 꽃이 피었다 졌고, 내면의 상처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 내 마음이 열리기도 했다. 무언가를 변화시킬 때, 자연에 기대고 타인에게 기대는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