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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파리'라는 단어를 보면 설레임이 드는 것보다 먼저 피하고 싶어진다. 너무나 유명한 도시이기에,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갈망보다 가보지 못한 질투심이 먼저 인다.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유명한 도시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밑바탕에는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크겠지만, 질투심에 눈이 먼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스노우캣의 다른 버전을 즐겁게 읽었지만 '파리'라는 제목 때문에 경계심이 인 것이다. 결국 스노우캣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구입했는데 참 잘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곱지 못한 마음을 철저히 부숴준 파리의 스노우캣은 멋졌다. 거기다 대리만족도 최고였다.
'파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여기저기서 들은 풍월밖에 없지만, 그 거리를 누벼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두려움 때문에 혹은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선뜻 가볼 수 없는 곳이 어디 파리 뿐이겠냐만은, 약 4개월 동안 파리에 머문 저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계획에 없던 일정을 늘려 버리는 바람에 금전적인 부담감이 상당했다는 저자 앞에서도 부러움은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유명 도시에 대한 여행책을 보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꼼꼼하게 기록해가지 못한 글과 시각을 현혹하는 시각 때문이었다. 단기적인 체류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조건으로 보자면 스노우캣의 여행도 그런 면이 다분하다. 이 책을 여행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진이 실린 것도 아니고, 세세한 글이 실린 것도 아닌 그림으로 채워지고 짧막한 글이 실린 책. 그러나 지금껏 만난 어떤 여행책들보다 훨씬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무엇이 그토록 좋았을까. 더군다나 다른 책에서 보아온 파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 장소는 낯이 익었는데. 아무래도 파리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낸 저자의 시선이 아니였을까. 사진의 생생함도, 파리의 적나라함도 없었지만 저자가 보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소소함.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파리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의 조화가 적절했다. 파리의 많은 곳을 겉핥기보다 적지만 몇몇 곳에 정을 담뿍 뿌려놓은 저자의 동선이 좋았다. 카페 이름이나 거리의 이름을 말해주어도 어차피 기억을 못하니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는 소소함이 대리만족을 시켜주었다. 카페의 나라라고 할만큼 넘쳐나는 카페는 분위기 좋은 곳이 많았으므로, 그곳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저자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파리의 유명한 곳을 구경하는 것보다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흘려놓는 모습이 더 아련하게 다가왔다.
파리라는 도시의 특징 때문일까. 저자가 경험한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낼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예술적인 감각이 철철 넘친다는 것이었다. 카페에만 앉아만 있어도 보이는 풍경이 그랬고, 거리 곳곳마다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그랬다. 예술의 도시답게 즐비한 예술적 공간들은 거리에도 넘쳐났다. 거대한 미술관안의 그림들도 좋았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름없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날때마다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가 벅찼다. 그 거리를 배회하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내가 혼자서 저런 거리를 걷는다면 느꼈을 고뇌와 걱정들까지도 유쾌하게 보여주었기에 되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마냥 부러워하는 마음만 들지 않는 과정이 소중했다. 거리의 작은 구석을 누빈 발품이 느껴졌고, 그랬기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일상이 파리에서 그대로 드러났기에, 저자의 많은 고충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런 꿈을 직접 꿔보고 싶었다.
저자가 파리에서 경험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키스 자렛과 팻 매쓰니의 공연 후기였다. 공연관람을 특히 좋아하는 나로써는 눈이 확 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한공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나에게 파리에서 본 그들의 공연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키스자렛의 음반이 달랑 두장 밖에 없지만, 킐른 콘서트 음반은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공연을 직접 보다니, 너무너무 부러웠다. 팻 매쓰니의 공연은 좀더 특별했다. 그의 공연 때문에 여행 일정을 연장한 것이나, 표를 구입할 때 그 사실을 들먹이며 좋은 자리를 찾아낸 것이나 그의 공연을 보고 사인을 받았던 일들. 저자가 느꼈을 뿌듯함이 어땠을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파리에서 그런 좋은 공연을 두 번이나 보다니. 정말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책을 덮고나니 파리의 거리거리의 생생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 짓눌림은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무작정의 욕망이 아닌, 한 사람이 체험한 파리의 경험담이 이렇게 가슴 벅차게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한 기쁨이었다. 책을 안고 자면 행복한 꿈을 꿀 것 같은 뿌듯함이 나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의 거의 마지막에 나왔던 팻 매쓰니의 공연을 되새기다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를 잘 모르지만, 낯이 익다는 느낌에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데 순간 내 음반꽃이에 그의 음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음반꽂이를 정신없이 뒤져보니 그의 음반이 한 장 나왔다. 맙소사! 예전에 재즈를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음반이었다. 한 두번 듣고 그대로 음반꽃이에 넣어 두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환기시킨 것이다. 그런 연결이 너무 뜻밖이기도 했지만, 짜릿했기에 음반을 꺼내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들을 때는 별 감흥이 없더니, 누군가의 경험이 곁들어 지니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이지만, 눈을 감으면 파리의 공연장이 떠오를 듯한 기분. 팻 매쓰니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무척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