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문득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원하게 될까. 물질? 명예? 아름다움? 아니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소망이나 꿈을 가지려 할까. 그런 상상보다는 그런게 세상에 어디 있냐는 의심부터 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려는 소망은 철저히 현실에 가려져 있기도 하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노력없인 대가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사람들은 현혹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쉬운 방법으로 비밀을 얻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 의심을 하게 될 것이고, 비밀에 또 다른 노력이 숨겨 있다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지나쳐 버릴 것이 뻔하다.
 

  성지순례 중이던 터키 이즈미르 항에서 한 노인을 만난 중년 사내를 보는 시선은이 진부할 수 밖에 없었다. 대뜸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행색도 이상하고, 자식을 잃어버린 사실에 넋을 놓은 노인에게 그런 비밀이 있다고 믿기가 힘들었다. 해변에서 위기에 처한 노인(아리)을 도와줬지만, 그 댓가로 큰 비밀을 알려주려 하는 노인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노인은 자신이 세계적인 억만장자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라고 했다. 그런 인물이 초라한 행색으로 자신 앞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리는 자신의 삶을 모두 이야기 하며,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50년 전 한 랍비로부터 받은 양피지 때문이라고 했다. 그 양피지에는 성공의 비밀이 담겨 있었고, 양피지에 적힌 내용대로 한다면 어느 누구도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아리가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전쟁 중에 헤메던 17살의 소년이 세계의 거부가 되어가는 얘기는 흥미진진했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따른(일일이 행동을 가르쳤단 말이 아니다. 아리 자신의 노력이 분명 있어야 했다.) 그에게 많은 성공이 따라왔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인물로 성장했다. 자유분방하고, 호탕한 그리스인 기질을 그대로 닮은 아리의 인생은 그의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그리스 신화적인 면모도 띄었다. 저자는 아리의 등장부터 양피지의 내용까지 철학과 신학, 역사의 꿰어맞춤이 뒤섞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리의 인생과 버무러진 다양한 이야기는 사실적이면서 신비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자기계발, 성공처세, 경제경영 등 다양한 장르로 이 책을 분류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편의 소설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의 흡인력을 뿜어냈다. 그만큼 아리가 지나온 삶은 범상치 않았고, 양피지의 비밀이 그대로 드러고 있었다.

 

  그러나 말년의 아리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는 불행하고 무언가 크게 후회하고 있다. 아리는 양피지의 비밀을 가르쳐준다는 말과 함께, 자기가 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었다. 양피지에는 성공의 비밀이 숨겨 있긴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단 뜻일까.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아리는 깊은 후회와 아픔이 서려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아리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깊은 슬픔과 회한을 토로했다. 그의 아들은 왜 죽었으며 양피지에 적힌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어 순식간에 아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양피지의 내용은 특별한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서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 아리의 성공가도를 달리는 인생에 빠져 중요한 메세지를 놓칠 정도였다.

 

  양피지의 주된 키워드는 공경이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공경하고 귀기울이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의 소망을 이루게끔 도와 기쁨을 주면 그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아리가 어려움에 처할때마다 양피지 '캅베드'의 가르침은 시기적절하게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세계적인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사업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도 캅베드 덕분이었다. 아리는 그런 캅베드의 뜻에 순종했고, 자신의 성공이 그 안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가 세계의 유명인물들과 얽히며, 역사의 한가운데 존재했던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이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는 캅베드의 메세지를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그가 캅베드의 격언중에서 꼭 하나 실천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신을 공경하지 않은 것이었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그는 장애물을 느끼지 못했고, 마치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신을 공경할 필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아리가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가정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가정에 대한 따뜻한 경험이 없었기에 아리는 하나의 사업체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호화 유람선에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이 줄 알았다. 사업상 하게 된 결혼이었기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이들은 끔찍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삐뚤어져갔다. 그리고 큰 아들은 비행기 사고로 죽어 버렸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아리는 캅베드를 얼마나 잘못 사용해 왔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중년 남성에게  자신과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리의 얘기를 통해 캅베드의 메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이룰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두 보아왔다. 자계서로 읽는다면 식상하게 줄줄이 늘어놓지 않아서 좋았고, 경영서로의 가르침도 어느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저자가 갖춰놓은 아리의 인생은 문학적인 기질도 다분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씌여진 내용이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당황스러웠다. 캅베드를 받은 인물은 누구이며, 그 이후로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을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가운데, 중년의 사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빌 게이츠치의 아버지로 설정된다. 빌 게이츠는 아리가 밟았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캅베드의 지혜를 적절히 사용한 인물로 쓰이기에 충분했다. 아리가 하지 못했던 신을 기쁘게 하는 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교만을 키우지 않는 일을 한 모델이었다.

 

  독자에게 좀더 현실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 미묘하게 이야기와 이야기를 엮은 것일지는 몰라도, 조금 더 결말이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캅베드의 가르침에 충실한 인물의 등장에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이라는 친숙함도 있었지만, 더 많은 가능성을 품기보다 한정된 시각에 갖히고 말았다. 독자들을 위해 남겨둔 또다른 가능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예도 있으니, 더 멋진 꿈을 이뤄보라는 무언의 남겨짐 같은 것. 어쩌면 한 편의 실재같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얼마든지 내가 될 수 있다는 메세지 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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