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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너무나 익숙해 원작을 읽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돈키호테 같은 작품이 그렇고 아마 홍길동전도 그럴 것이다. 여기저기서 익숙하게 들어온 이야기거나 혹은 에피소드가 너무 유명해서 당연히 읽었겠거니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기억을 떠올려보면 원작을 제대로 읽은적이 없다는 사실이 쉽게 밝혀진다.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해왔기에 드는 당연한 착각이다. 그런 작품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돈키호테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천천히 기회를 만들어가기로 하고, 홍길동전에 먼저 기회를 얻었다.
홍길동전의 몇몇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긴 했지만, 앞뒤 상황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특히나 홍길동이 도둑이 되어서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일부분의 내용만 알고 있는 무지였고, 어디가서 제대로 읽었다고 말도 못할 부끄러움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각오(?)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전소설이기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어렵게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순간에 불과했다. 김탁환님이 풀어쓴 내용은 어렵지 않았고, 그동안에 몰랐던 홍길동을 알아간다는 성취감에 들떠 책장은 가볍게 넘어갔다. 거기다 백범영 화백의 그림은 상상력을 덧대주었고, 홍길동전이 묶인 책의 가치를 돋구어 주었다.
홍길동의 아버지가 범상치 않은 꿈을 꾸고 난 후, '군자를 낳으리라'는 생각에 부인을 취하려 했지만 부인이 군상의 됨됨이를 들먹이며 거부한 일은 누구나 알것이다. 몸종 춘섬과 잠자리를 하여 길동을 낳고, 길동이 너무 총명하자 애첩이 시기를 하여 목숨을 위태롭게 한 사건도 알 것이다. 그 길로 집을 나서 도적떼의 두목이 되는 과정까지 익숙할지 몰라도, 지금까지의 세세함과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호기심이 일었다. 너무 많은 부분을 알기에, 혹은 고전이기에 낯선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길동의 태몽부터 그의 삶과 행적의 많은 부분은 신화적인 요소가 짙었다. 힘이 장사같고, 요술을 부리며, 왕이 되는 일등은 길동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사시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길동을 통해 전하려는 메세지는 곳곳에 깔려 있어 편파적으로 흐를 수 있는 시선을 분산시켜 주기도 했다.
홍길동의 활약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활빈당의 두목이 되어 부패한 자, 탐관오리, 뇌물거래를 하는 자들만 골라서 약탈하는 부분일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을 건들이지 않는 사실의 바탕에는 사회의 혼란함을 내외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승려들의 부패척결부터 시작해 전국방방곡곡에 자신의 분신을 보내 활동하게 함으로써, 길동은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길동을 대처하는 왕이나 신하들은 소극적이었고 융통성이 없었다. 길동의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을 때, 처음에는 분노했을지라도 그런 길동을 활용할 줄 알았다. 길동이 혼란을 주기는 했지만, 나라 정비를 위해서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도 신하도 길동의 약점을 찔러 잡아들이기에만 급급했고, 길동은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자신의 뜻을 피력하는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자신을 골치거리로만 생각하는 나라를 떠나 자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땅 율도에서 신분의 격차도 부정부패도 없이 평안한 삶을 마친 길동. 자식된 도리도 뒤늦게나마 하게 되었고, 율도로 오는 과정이 험란하고 길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길동은 행복했다. 길동이 정착한 율도는 많은 이들이 갈망한 유토피아였다. 홍길동이란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홍길동전. 길동의 행적을 좇다보면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만족케 해주는 묘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완판과 경판의 '홍길동전'이 실려 있는데, 두 판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읽는 묘미도 나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홍길동전을 제대로 읽었다는 후련함 때문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홍길동전을 계기로 미디어로 인해 너무나 익숙한 작품들을 원작을 찾아서 읽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