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도무지 무엇에 관한 책인지 알 수 없었다. 부제목은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었지만, 만화로 된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최근에 이스라엘이 가좌지구를 공격한 것으로 인해 나온 책인가보다라고 생각했지만, 1982년에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는 것을 작품배경을 보고 알 수 있었다. 1982년, 팔레스타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때의 일을 만화로 다룰 정도라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현재 팔레스타인들에게 처해진 상황을 보건데 썩 유쾌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있는데(과연 헤아여 줄 수 있는 고통일까), 거기다 오래전의 대량학살을 알아가야 한다니. 책은 두껍지 않았는데 책을 향한 나의 손길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배경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배경을 알아야지만 만화 속의 인물들의 행보며, 그들의 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쪽 밖에 차지하지 않는 작품 배경은 읽어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그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짧은 내용속에 담긴 것은 엄청났다. 300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한 과정은 너무 터무니 없었고, 그 숫자가 믿기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잘못된 분노와 무절제로 그 수많은 사람들이 3일만에 사라져 버렸다.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방위군을 동원헤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하지만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점령 후 자신의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계획으로 바꿔 버렸다.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시리아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방위군은 베이루트 외곽을 포위하고 진압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라 이스라엘 방위군이 베이루트 침입 위협은 사라진 상태였다. 제마엘은 아리엘 샤론의 계획대로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두 나라의 긴장이 양화될 거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을 9일 앞둔 1982년 9월 14일, 제마엘은 폭탄 테러로 살해되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현재까지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날 팔레스타인 난민촌에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기독교 민병대의 진입 목적은 무장 세력을 색출한다는 이유였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미 튀니지로 떠난 후였고 난민촌에는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민병대는 바시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3000명이나 되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알려져 이스라엘 시민들은 공식 조사 위원회를 만들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조사 위원회는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이 대량학살을 인지하고도 그 학살을 멈추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 샤론은 해임되었지만, 20년 뒤 그가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작품배경으로 실린 짧막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사실이 들어 있었고, 도무지 믿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이 배경을 바탕으로 주인공이자 저자 자신인 아리 폴먼의 기억을 좇는 만화가 이어진다. 아리는 1982년에 자행된 대량학살에 참여한 군인이었지만, 기억을 잃어 버렸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우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학살에 참여했던 전우들도 말이 아니었다. 21년동안 악몽을 꾸는 친구, 성공은 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탐탁치 못한 친구, 의사로써 그를 도와주려는 친구를 통해 그는 학살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작품배경이 아니었다면,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억의 상실이라고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알았기에 그들의 증언과 기억이 생생하게 전해졌고, 그 당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점에서 씌여졌으므로 얼마나 긴박하고 잔인했는지를 몸서리 치게 느껴졌다. 그들의 기억을 좇다보니 학살된 양민들도 양민들이지만, 잘못된 것인지를 알면서도 명령이기에 따라야 했던 군인들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권력과 정치에 비유상함만 느끼고 말기에는 탐탁치 않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양민들의 학살 현장에 들어간 기억으로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책의 끝은, 너무나 끔찍한 사진 몇장을 싣고 있었다. 학살 당한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시신들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가족, 생활, 삶의 언저리는 커녕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었지만,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학살의 희생자라는 생각에 사진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과연 죽어 있는 그들을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저런 사람들이 3000명이나 된다면 그 사람들을 죽인 군인들에게 과연 그들이 사람으로 보였을까.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어찌되었든 이 만화는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의 고백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끔찍했다. 사람 목숨이 아무런 가치도 없게 느껴지는 사건 속에서 그 일을 자행했던 사람은 이스라엘 총리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은 비극이다. 가장 비극적이고 비참한 사람들은 희생된 팔레스타인들이지만, 그 일에 조연을 맡았던 군인들 까지도 비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옮긴이는 아리 폴먼이 이스라엘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정치지형에 신경 쓴 나머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제대로 다 못전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5.18 광주학살에 투입됐던 병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고발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제목부터 미리 정해 <전두환과 왈츠를>이라고.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장의 사진으로 보여졌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미 우리나라의 역사에 존재했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분노가 인다. 과연 그들에게 전쟁은 끝난 것일까. 대답 없는 질문으로 널뛰는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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