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2 -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 바쇼의 하이쿠 기행 2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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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권에 이어 바쇼의 하이쿠 기행 2번째 책을 읽었다. 1권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1689년에 오쿠를 향해서 가는 여정을 기록했다면, 2권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는 1684~5년에 걸쳐 노자라시 기행을 담은 책이다. 기행을 떠나기 전, 4년 남짓의 은둔 생활을 하다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라고 한다.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님께 성묘하고, 오가키의 하이쿠 시인 보쿠인을 방문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여행이기도 했다. 1권에서는 주석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2권은 주석이 현저히 줄어들어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이쿠와 기행이 어우러진 분위기를 좀더 만끽할 수 있어 편안했다.

 

  1권을 읽으면서 주석과 배경지식에 힘들었음에도, 하이쿠가 손에 잡힐듯 말듯한 미묘한 매력에 빠져 2권에도 선뜻 손이 갔다. 그러나 책이 얇다고, 주석이 적다고 좋아했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과 모호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하이쿠 기행을 읽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그 안에 내포된 의미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하이쿠의 특징상 설명이 없이도 즉각 짧은 시어에 어떠한 풍경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설명이 주어지지 않으면 애매모호한게 하이쿠다. 짧은 율격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의미파악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하이쿠다. 짧은 글자 안에 어느 정도 정해진 시어들을 채워야 하는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그래서 하이쿠의 의미는 철저히 주관적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바쇼의 하이쿠 기행 2권에서 봉착한 어려움이 그것이었다. 바쇼가 어떠한 심경으로 이 여행을 출발했는지 서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나 같은 일반독자들이 깊은 의미를 헤어리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바쇼의 발자취를 따라 기행을 하며 하이쿠를 읊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안에 내포된 많은 것을 지나쳐 버린 느낌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배경지식이 얕고, 시대적 교감이 많이 떨어졌기에 생긴 어려움이였으리라. 그러나 바쇼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것을 알려 했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어려움과 욕망을 잠시 눌러둔 채 하이쿠 기행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왜 바쇼가 하이쿠의 유명한 시인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애절한 시와 여행지에서 만난 하이쿠 시인과 교류하는 장면들은 그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1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바쇼의 하이쿠 기행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는 그림이었다. 바쇼가 직접 그린 그림과 시가 적혀 있는 것도 있었고, 바쇼가 여행한 곳을 보여주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글로 상상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한 점의 그림들이 희미하게나마 공간이동을 시켜주었다. 또한 2권에는 부록이 딸려 있었는데, '하이쿠의 세계'를 통해 하이쿠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7.5를 기본으로 하는 짧은 율격을 지닌 시가 하이쿠라고 알고 있었지만, 하이쿠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어 아쉬워하던 참에 만난 부록은 나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 주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쿠는 엄밀히 말하면 '하이카이 홋쿠'라고 한다. 하이카이란 단어가 '골계滑稽 '라는 뜻의 중국어에서 왔으며, 일본에서 이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일본 최초로 공식적으로 편찬된 칙찬 와카집 [고킨와캬수(905)]에서라고 한다. 하이카이가 문예 형식의 하나로 성립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에 들어서의 일이니, 렌가 중 정통이 아닌 것을 하이카이의 렌가, 즉 하이카이라고 했다 한다. 이렇게 렌가의 여기餘技로 시작된 하이카이는 17세기에 이르러서 일본 운문 문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하이쿠는 '홋쿠'와 같은 의미의 용어로, 1890년대에 마사오키 시키가 하이카이를 특히 홋쿠 중심으로 개혁한 이후의 것을 카리킨다. 그래서 작자와 독자가 동일한 그룹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작자=독자'일 필요도 없단다. 바쇼는 단순한 언어유희를 벗어난 문학으로 끌어 올리고자 했으니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다.

 

  하이쿠는 5.7.5의 짧은 시지만, 직접 지어 보면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이쿠를 즐기지만, 막상 율격과 형식에 따라 지어보려고 하면 텅빈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냄을 느끼게 된다. 하이쿠랍시고 글자에 맞춰 몇 편 지어보기도 했지만, 유치하고 시시해서 조금 흥미를 갖다 말았다. 바쇼의 하이쿠를 통해 독자의 위치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이이다 류타는 뛰어난 작품이란 "의미 해석의 영역을 넘어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 이라고 말했다. 바쇼의 하이쿠는 의미를 알고 배경지식을 알면 더 큰 울림이 오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나의 감정을 이입시켜 주는 작품이 많았다. 단순히 하이쿠라 하면 바쇼가 떠올라서, 혹은 바쇼가 유명한 시인이기 때문에가 아닌 나의 가슴을 얼마나 울리는지를 살펴보며 바쇼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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