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새 - 이덕무의 시와 산문 모음집
이덕무 지음, 김용운 엮음 / 거송미디어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재미난 책을 읽다보면 밤 12시를 넘기기 마련인데, 출출함을 참지 못할 때가 많다. 거실에 식구들이 자고 있어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지 못하면 그렇게 애석할 수가 없다. 배가 너무 불러도 독서가 힘들지만, 배가 너무 고파도 독서가 되질 않는다. 간식을 준비해야지 하면서도 늘 잊어먹고 배고픔에 허덕이다 잠이 드는 날이 많다. 그때의 배고픔이 나에게 가장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배고픔은 이정도지만, 굶주림과는 거리가 먼 배고픔이다. 그래서 이덕무의 배고픔을 보고 있노라면, 부끄러워진다. 그는 가난해서 배가 고팠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고, 배고파야 책이 더 잘 읽어진다고 했다. 배고픔과 거리가 먼 시대에 살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 먼 깨달음이다.

 

 

  이덕무를 알게 된 것은 ‘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서였다. 그 책 이후로 이덕무의 책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와 산문 모음집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 책은 이덕무가 관직생활을 하기 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씌인 글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마흔이 넘어서 관직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가 겪었던 어려움이 어땠을지 짐작은 가지만 상상은 할 수 없다. 그의 글에 그런 면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절절해졌다. '가장 으뜸가는 것은 가난을 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처연하게 받아들였던 이덕무. 어쩌면 가난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었기에 그의 내면을 깊이 울리는 글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만 보는 바보'에서는 간서치看書痴인 자신의 모습과 백탑파, 중국 연경을 다녀온 일화들이 담겨 있었다면, '배고픈 새'는 간서치였던 이덕무가 겹치긴 하지만 가난함과 학문에 대한 깨달음, 직접 지은 사소절士小節등으로 채워져 있다. 다양한 글이 실려 있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가난'이었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짤막한 산문과 시를 읽고 있노라면 소소한 그의 일상이 눈 앞에 그려졌고, 그의 마음 따라 나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건강이 연약했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내면에서 나오는 글들은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깨달음이었고, 충고였고, 본받고 싶은 점이었다.

 

  이덕무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면서도 다른이에게 하는 충고라는 느낌도 강했다. 번뇌에 휩싸일 때면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의 글이 와닿는 부분이 많았고, 메모지를 붙여 체크한 곳도 많았다. 그 부분만 찾아 읽어도 이덕무의 마음이 내게 와닿는 느낌이 들어 언제 읽어도 차분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소소한 글이 대부분이었기에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기도 해서 내 기분을 다스리지 못할 때도 있었다. 조카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라든가,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릿한 마음, 어머니를 잃은 절절한 심정 앞에서는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에게 책이라는 귀한 벗이 있고, 백탑파라는 소중한 인연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고생시켜야 했고, 책을 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기꺼이 즐거워 했던 또 다른 이면에는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마른 나뭇가지가 내 마음에서 탁탁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그런 이덕무를 다시 만날 수 있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책만 읽다보면 세상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가 하고 걱정할 때가 있는데, 이덕무는 그런 나의 시름을 한번에 씻겨 주기도 했다. '모름지기 벗 없음을 한탄하지 말고, 책과 더불어 노닐 일이다' 라고 했으니 그의 말을 따라 책을 통해 노니는 일을 멈추지 않고 즐거워 하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