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쿠 기행 1 - 오쿠로 가는 작은 길 바쇼의 하이쿠 기행 1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 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바쇼의 하이쿠 기행' 제목을 본 터라 구입하려고 보니 절판된 상태였다. 절판된 책은 소유욕이 더 간절해 지는 터라 안타까움으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책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음에도 무조건 구입했다. 그러나 몇 장 읽지도 않고 책을 덮어 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하이쿠 기행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얼마 전 서점에서 바쇼의 하이쿠 기행 3권 세트를 보니 마음이 동했다. 얼른 1권을 읽고, 다음 권도 사서 읽고 싶었다. 하지만 1권을 읽기가 녹록치 않았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주석이 1/3을 차지하고 있었고, 책을 읽으랴 주석 보랴 흐름이 자꾸 끊겼다. 이 책을 갖고 있는 지인에게 투덜대자 내용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주석을 따로 읽던지 아니면 두 번째 읽을 때에 주석을 찾아서 읽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책을 절반쯤 읽다가 지인의 말대로 내용을 읽고 주석을 몰아서 읽었다. 내용은 조금 잡히는 듯 했지만, 역시 주석 내용이 겉돌아서 애를 먹었다. 내용을 쭉 읽어나가면서 궁금한 부분만 주석을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주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더군다나 책의 뒷면에 있는 주석은 찾아보는 불편함과 귀찮음이 공존하다.), 가장 큰 난관이 주석이었다. 바쇼가 1689년에 일본의 동북지방을 여행한 수기였기에 시대적 동떨어짐이 장애로 다가올 거라 생각했었다. 장애를 덜어주기 위해 기입된 주석이 오히려 난관이 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 하면서도 읽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300년 전의 하이쿠 시인이 무엇을 위해 150일에 거쳐 2,400킬로미터를 여행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고, 그 과정을 알고 싶었다.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배낭여행이라든가 자유를 갈망한 여행의 성격이 아니었다. 바쇼가 여행한 시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개막된 에도 바쿠후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다고 한다. 문화가 도시를 중심으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던 시절, 바쇼는 변방인 오쿠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세속적인 용무를 빼고, 오로지 시인으로서의 순수한 무상의 행위로, 여행 그 자체를 순수한 예술적 실천으로 삼았다고 한다. 걸식여행을 각오하면서까지 제자 '소라'와 함께 먼 여행길에 오른다.

 

  하이쿠 기행이라고 하기에, 하이쿠가 주를 이루는 책일 거라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 하이쿠를 짓기도 하고, 지방 시인들과 하이카이로 교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하이쿠의 나열보다는 여행의 배경과 하이쿠를 짓게 된 사연들이 더 많았다. 책 제목 그대로 하이쿠를 통한 여행을 했고, 시인으로써 갈망했던 여행을 한 것이다. 바쇼가 기록한 것과 제자 소라가 기록한 것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상세한 주석에 모두 설명되어 있으니 바쇼가 걸었던 길을 상상하며 하이쿠 시인이 되어보는 착각에 빠지며 읽는 방법이 가장 좋아 보였다. 바쇼가 오쿠지방을 선택한 연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와카의 명소인 우타마쿠라 탐방과, 공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허무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혼, 그리고 자시이 확립한 바쇼 풍 하이카이의 지방화 시도였다고 한다. 해설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곳곳에 바쇼의 뜻은 잘 나타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명소에 대한 찬사와 감탄, 참배를 하고 애도하는 모습, 많은 사람과 시를 나누고 읊던 모습은 책을 읽는 독자의 눈에도 잘 띄었다.

 

  내가 읽은 하이쿠들은 현대의 하이쿠이기도 했고, 몇 수 되지 않아 하이쿠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짧은 시구 속에 들어있는 함축적인 의미와 묘사에 감탄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하이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바쇼의 하이쿠를 읽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시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었다. 책의 성격만 보자면, 하이쿠 기행이라기 보다 기행문에 하이쿠가 감칠맛나게 곁들어진 느낌이었다. 바쇼의 하이쿠의 진수는 2,3권에서 만끽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바쇼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기행문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훨씬 더 크고 많다. 책과 주석만 읽었더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고, 무의미하게 지나쳐 버렸을 것들을 해설에서 아주 상세히 다뤄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번역하고, 10년만에 2, 3권을 번역했다고 한다. 그만큼 바쇼에 대한 열정도, 그런 바쇼를 한국 독자에게 알리겠다는 신념도 강했다. 주석이나 해설을 보면 그런 애정이 듬뿍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낀 바쇼의 하이쿠 기행의 의미를 옮긴이는 '기행이라는 문예 형식을 빌려서 묘사한 풍아風雅의 이상도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했다. 그의 해설을 듣고 있자니 두리뭉실하게 뭉쳐있던 느낌들이 명확해 지는 기분이었다. 일본의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바쇼의 하이쿠 기행이 국내에 번역된 것이 너무 기쁘다. 나에게 이 책을 언급해주었던 또 다른 책의 저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현실을 벗어나 오로지 예술의 세계를 살다 간 바쇼의 삶의 방식에 많은 동경을 품은 사람들. 오로지 문학적인 태도만을 고수했던 바쇼의 태도는 우리가 앞으로 눈여겨 보아야 할 태도라며 옮긴이는 글을 마치고 있다. 바쇼를 따라 17세기 후반의 일본을 여행한 듯한 느낌. 곳곳에 배어나오는 바쇼의 감성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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