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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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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헌책방에 갔다. 새책을 사러 가기엔 조금은 부담스럽고, 어떤 헌책들이 들어왔나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오랜만에 가서인지 못 보던 책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책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열심히 목록을 훑고 다녔다. 좀처럼 맘에 드는 책이 나타나지 않더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과 저자보다는 그림이 낯이 익었다. 온라인에서 자주 본 그림이었고, 책 안의 몇몇 삽화들도 눈에 익었다. 그림을 살펴본 후에야 저자를 보게 되었는데, 내로라 하는 여러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단박에 매료 되어 구입해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간 비싸게 구입하긴 했어도 이런 책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집에 와서 책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제서야 이 책의 구성이 보였다. 여러 나라의 46명의 작가에게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보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내용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해서 만들어진 책이라고 했다. 1996년에 만들어진 책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이런 사연을 담고 만들어졌다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읽었더라면, 아는 작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고 특별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그나마 책에 실린 몇몇 작가를 알게된 후 이 책을 마주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책을 모티브로 한 크빈트의 그림들은 나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저자들의 글은 요청에 의해 씌여진 것이다. 어떠한 주제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그림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느낌을 적어오라는 부탁이 있었다. 아무리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라 하더라도, 한 장의 그림을 보며 글을 써낸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글의 형식은 자유롭더라도 비교적 짧은 글에 느낌을 살려 내는 것은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림에 글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심하지 않았을까? 스토리를 만들어 내어 주어진 그림의 상황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의 나래를 좁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하지만 내가 했던 걱정이 드러난 여러 저자의 글은 모호하고 난해했다. 저자들이 써 놓은 글에 그림을 맞출 필요도 없고, 온전히 독자가 그림을 통해 독자적인 상상을 해도 되지만, 그런 그림 앞에 펼쳐진 글은 나의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얽혀가는 글도 있었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글, 촘촘히 엮인 글, 여러가지 상황을 요약해 놓은 글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러나 그런 글과 그림이 매치되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글과 그림 사이에 장애물이 느껴졌다. 그 장애물이 화가와 저자, 그리고 독자와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과 그림이 놓여 있으면 그림을 먼저 보게 되고, 그림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펼쳐 놓았을지 궁금해 하며 읽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거나, 너무 깊이 있게 다가간 글들이 대부분이어서 무엇을 독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헷갈렸다.

 

  크빈트의 그림이 독특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책과 연관된 그림들은 일전에 볼수 없었던 독특한 그림들이었다. 책을 덮고 자는 아이, 혀를 내밀고 있는 책, 책에 귀를 기울이는 노인 등 얼핏 봐도 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에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글을 썼다. 그렇다면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댄다면 어떠한 세계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 거기다 작가들의 문화와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장애물의 존재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교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많은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도 여러 갈래로 갈리어서 혼란이 오는 마당에, 글 속에 감추어진 무언가를 캐내는 것은 어려웠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림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설명해주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림 속으로 직접 들어가 허구를 끌어내는 글이 많았다. 그런 상상력에 놀랄 때도 많았고, 한 장의 그림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공감을 끌어 내지 못했고, 각각의 그림에 따른 다양한 시각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에 대한 느낌을 적어달라고 했다면,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속에 있는 내용을 부탁했기에 작가들은 몰입해야 했고, 색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런 독창적인 상상이 오히려 크빈트의 그림에 대한 느낌을 좁혀 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관련된 그림,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글.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를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치고 보니, 지난함 때문에 겉돌고 말았다. 저자의 글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독특함을 맛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에 너무 몰입해 역효과를 내버린 나 같은 독자들도 존재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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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나는 이 책을 그림 보는 맛으로 봐요~~ 글 내용은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어요.
오래 전에 'TV책으로 말하다'에 소개돼서 샀는데, 내용보다는 그림이 좋았어요.^^

안녕반짝 2009-01-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림은 아주 좋았는데, 글은 영...

2009-10-1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저도 글보다는 그림이 더 끌립니다..


그림을 보면서 저의 세계를 그려나가고 싶네요.


글보다는 그림세계에 더 푹 빠지고 싶은 현재의 저랍니다.^ ^

안녕반짝 2010-04-12 13:13   좋아요 0 | URL
베이직 아트 시리즈 봐보세요! 그 책 괜찮더라구요.
특히 에드워드 호퍼와 빈센트 반 고흐가 전 괜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