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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의도 ㅣ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집에 읽을 책이 많다보니 책들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다. 한참 열을 올리고 읽던 작가도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책장에 묵혀둔다. 그렇게 묵혀둔 책들이 꽤 되지만, 읽고 싶을 때 꺼내서 읽으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상뻬 책도 그랬다. 한참 불이 붙었을 때는 전 작품을 탐독할 것처럼 구입해서 읽었는데, 어느 순간 시들해져서 책장에 꽂아두었었다. 그러다 순전히 내 기분 때문에 눈에 띄게 되었고,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책을 펼치니 푹 빠져들었다. 현재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은 잊은 채, 상뻬가 그려 놓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흐뭇한 미소가 나를 지배하고,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가는 그 평화로움. 그 기분이 내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이 책이 오자마자 바로 펼쳐 들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처럼 상뻬의 글과 그림이 들어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들 덮고 다른 책을 읽다가 이제서야 내 눈에 다시 들어 온 것이다. 오히려 그런 묵혀둠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아서 책을 읽고 난 지금,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든다. 책 제목처럼 <겹겹의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났고, 상뻬 특유의 유머와 풍자, 엉뚱함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크기가 무척 큰 덕분에 종이 가득 그려진 상뻬의 데셍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데셍 아래에는 글이 없거나, 아니면 몇 줄, 길어도 열 줄을 넘기지 않는 글이 실려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상뻬의 글과 비교해 볼 수도 있었고,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봄으로써 상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묘미는 책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기에 기분 내키는대로 만끽하면 되었다.
상뻬의 데셍도 그렇지만, 그는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끔 해준다. 섬세한 데셍 속에서 말 하는 주인공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능청맞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런 인물은 발견된다. 빽빽한 건물과 인파속에서 주인공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고, 배경과 상관이 없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엉뚱함도 즐거웠다. 또한 단 한 줄의 글과 데셍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들도 있었다. 가령 첫 작품에서는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잠옷바람인 부인은 마당에서 춤을 추며, 고독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며 기뻐한다. 데셍의 배경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소를 거치며 상뻬의 감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마라톤 결승점에서 마지막에 달리고 있는 선수는 갑자기 이탈을 한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이 씌여져 있을 뿐이다. '경승점에 가서 구경해야겠어'. 거대한 데셍 속에서 거의 보일듯 말듯한 한 선수의 이탈과 말 한마디는 데셍 전체를 아우르며 빛을 발한다. 선수의 한 마디 때문에 그려진 수많은 인파들이 헛되었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그런 섬세한 배경이 존재하는 것이 상뻬의 데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뻬의 글이 있더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데셍을 들여다보고 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데셍을 만나도 꼭 의미를 파악하기 보다 그냥 스쳐지나가도 된다.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책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 상뻬 책이므로, 곳곳에 있는 재미를 놓치려 한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글이 없이 그림만 펼쳐지는 것도 있었는데, 그야 말로 독자가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간단한 데셍이 있을 뿐인데도, 웃기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묘미에 빠질 수 있어서 책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상뻬의 작품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집에 있는 상뻬 책을 본 다음에 없는 책들을 서서히 구해서 봐야 겠다. <겹겹의 의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저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독자에게 친절히 알려 주기도 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상뻬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단순함이 아닌 마법이 깃든 데셍을 그리는 상뻬의 작품들이 그래서 좋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