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가끔은 시류에 휩쓸린 독서를 할 때가 있다.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를 달리고 있는 책들이 그런 독서를 이끌어 낸다. 오히려 그런 책들을 만나면 너무 인기가 많아서 피해버리곤 하는데, 황석영님의 책은 좀 달랐다. 블로그 연재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책으로 엮어서 나왔을 때도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 인기를 달리지 않았더라면 가볍게 읽었을 책을 구입부터 망설이게 만들었다. 인기 많은 책에 대한 괜한 시기 질투인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콕 찍더니 계산을 대신 했다. 그렇게 힘겹게 내 품으로 들어온 개밥바라기 별. 책을 선물 받은지 거의 두 달 만에 읽게 되었지만, 그동안 머뭇거린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 갔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때 받지 못했던 위로를 대리만족으로나마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던지 나의 추억과 책 내용을 뒤범벅해 끈적끈적한 새로운 기억으로 탄생 시킨다. 그런 과정속에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국내 성장소설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국외 성장소설을 읽으면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더라도 10대만의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국외 성장소설에 익숙해서인지 국내성장 소설을 만났을 때는 익숙한 정서임에도 낯설었다.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서 오는 느낌이랄까.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드물게 만난 국내 성장소설에는 그런 터울이 존재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성장소설이는 생각을 못했다. 성장소설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연령대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호하지만, 고등학교 생활과 졸업 이후를 다룬 내용에 성장소설이라는 명확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청소년이라기보다 이제 막 아저씨(?)가 되어가는 단계의 청년들이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또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었기에 배경이 60년대였다. 80년대 초반 태생인 내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번뇌였을 것이다. 그 외에는 배경도, 개개인의 생각도, 사회 분위기도 달랐기에 온전한 흡수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루하기만 했던 나의 10대를 생각해보고, 20대 초반에 찾아온 사춘기를 떠올리면 그들의 방황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핸드폰을 쥐게 된 것은 20살 때 였으니, 고등학교 때 삐삐를 사용한 것 외에 모든 통신 수단은 집 전화와 편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친구들도 잘 만나고, 큰 불편함 없이 살았다. 친구들과의 아지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물어물어 소식을 구하다 보면 대부분 행동반경이 드러났다. 그 안에서 웃고 떠들며, 고민거리를 나누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과 친구들이 '개밥바라기 별'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추억은 그들에 비해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회적 분위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생인 그들에게 정의를 불어 넣고, 빨리 성숙하게 만든 그런 분위기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수도권에서 생활했던 그들의 활동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과 내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행동과 공상이라는 거대한 벽이었다.

 

  주인공 준이는 베트남으로 군복부를 위해 떠나는 시점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늘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준이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만, 정작 책 속의 인물 중에서 가장 파악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준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친구들이 준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얘기해 주어 이해와 다양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준이가 그토록 방황을 하고, 남들과 좀더 다른 뜨거운 사춘기를 보낸 이유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 방황에 이유가 있을까마는, '그냥' 이라는 이유가 붙어도 열정과 무기력함으로 치부할 수 있는 시기가 자아를 찾기 위한 때가 아닐까. 거기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들이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관두고 싶으면 관뒀고, 대학의 입학 여부와 선택이 보류 되더라도 자신을 불태워 보았다. 전국 여행을 하고, 산에서 살고, 일용직을 하며 돌아다닌 것을 행동이라고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맘때 마음 속에 품었던 뜨거운 불덩이를 결코 그들처럼 꺼내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방황을 '행동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하면서도 흐릿한 그들의 청춘을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나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행동'과 '공상' 사이의 벽을 깨트릴 수도 없었고, 벌어진 틈을 메울 수도 없었다. 내가 주로 좋아했던 성장소설은 1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었기에 낯선 오빠(?)들이 아저씨가 되어 가는 과정을 어찌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어른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뜨거움을 외면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단지 그 이름을 얻기 위해서 세상과 맞섰다는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그들은 알 것이다. 어른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혼란스러웠을 뿐이였다는 것을. 그런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개밥바라기 별이다. 금성이 저녁에 나타날 때에 '개밥바리 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 별을 바라볼 때에 자동적으로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뜨겁게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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