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맨 부커상을 주목하게 된 것은 2006년 수상작인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때문이다. 우연히 알게 된 존 반빌의 소설이 너무 좋아 부커상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올해의 맨 부커(2002부터 금융기업인 맨 그룹Man Group이 상금을 지원하면서 명칭이 '맨 부커상'으로 바뀌었다.)수상작도 구입해 두었지만, 작년 수상작도 비슷하게 출판이 되어서 그 책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2008년 수상작보다 왜 더 늦게 출판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잠시, 책 두께를 보자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 시점에서 조금 늦게 만난 감도 없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석희님이 번역을 맡아 주어서 흡족한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원래 두꺼운 책을 좋아지만, 요즘에는 읽기 보다는 내 책장에서 전시용으로 몰락(?)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두꺼운 책을 손에 쥐게 되니, 부담도 갔지만 묵직한 느낌이 좋았다. 특히나 겨울에 읽는 장편은 추위도 잊은 채, 책 속으로 나를 끌어 들이기에 더 매력적이다. 장편은 독자의 입장에서 두 종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두께에 상관없이 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빠져 들게 만드는 것과 두께에 상관 있게 지루한 책으로 말이다. 어이없는 나뉨이지만, 전자의 장편을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면에서 <상실의 상속>은 전자에 가까운 편이었다. 온전한 것이 아닌 가깝다고 표현한 이유는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피부로 와닿지 않는 내용일지라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어느 한 주제를 일관성있게 명시하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누군가의 기억을 더듬듯 드러내지만 시간을 뒤죽박죽 흐트려 놓는다. 그 흐트러짐은 기묘하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코믹, 진지, 낙서 같은 실없는 말, 아름다운 경치 묘사와 슬픔과 기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문장이라고 했다. 두께 때문에 읽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들을 가볍다라고 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이 낯설었을 뿐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히말라야의 작은 도시 칼리퐁. 들어본적도 없을 뿐더러 위치 짐작도 되지 않는 산중의 집, 초오유에는 16살의 소녀 사이와 은퇴한 판사인 외할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다. 사이는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을 하자 기숙사에서 거의 쫓겨나듯 외할아버지 댁으로 온다. 전직 판사인 제무바이는 딸과 의절한 후, 손녀의 존재도 잊고 있었다. 그런 손녀가 불쑥 찾아온 것이 달갑지 않지만, 소설의 시작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한다. 판사의 총을 뺏으로 온 불량 청소년들의 등장으로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그 사건만으로도 무언가가 석연치 않고 께름직한데, 저자는 독자에게 바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지 않는다. 난데없이 이야기의 중심은 초오유의 요리사 아들 비주가 일하고 있는 뉴욕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비주의 처지도 독자를 곤경에서 끌어내어 주지 않는다. 불법 이주 노동자로 여러곳을 떠돌며, 불 이익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고 인도와 뉴욕이라는 거리와 문명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확연히 드러났다. 초오유에서 드러나는 인도의 현 시류는 지켜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거기다 불법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까지 같이 지켜봐야 했다. 어째 우울함으로 급격히 감정이 격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의 예감대로 이야기의 흐름은 순탄하게 명맥을 유지해 가는 것 같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의외였다.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의 삶의 일부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발을 헛디뎌 웅덩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줄거리를 말하라고 하면 흐름을 묘사하고 있기에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책 속 인물들의 삶 속에 비춰진 현재와 과거에 대한 잔상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구경꾼의 입장이였기에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이, 비주, 제무바이의 삶이 그려지긴 하지만 회한과 후회가 깃들어 있을 뿐 혼란스러웠다. 비주가 사랑에 빠지는 지안과의 관계도 시원하지 않았고, 힘들게 미국으로 건너간 비주의 삶은 비참했다. 전직 판사였다던 제무바이는 좀 나을까 싶었지만, 그가 회상하는 과거는 세 인물 중에서 가장 씁쓸하다. 권위와 허영에 물들어 이제는 무기력해져 버린 제무바이의 과거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의 상실들이 사이에게 혹은 비슷한 세대인 비주에게 상속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속된 말로 어른들이 자주 하는 '나의 죄' 때문에 후손들의 삶도 평탄치 않음을 드러내고 있는 삶. 제무바이의 회상은 그런 상실로 그득했다.
제무바이의 상실이 과거형이였다면, 사이와 비주는 현재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잃고, 사랑을 잃고 인도인도 영국인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비주. 혼란스러운 인도의 사회 속에서 그녀의 정체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외따로이 떨어져 지내왔던 과거처럼, 그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애견 무트에게 애정을 더 쏟는다. 무트가 실종 됐을 때 편협함과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제무바이였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비주는 어떠한가. 하나뿐인 외 아들을 미국에 보내놓고, 오로지 그런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길고 긴 여정의 마무리는 비주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의 모습은 더 초라하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가져간 것을 잃지는 말아야 하는데, 미국으로 갈 때보다 더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치 우리 윗 세대들의 삶에 서려 있는 한恨을 지켜본 것 같았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서구적인 요소가 비서구적인 나라에 도입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두 세계 사이의 불균형은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 변화는 나중에 개인적인 영역과 정치적인 영역에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소설 속의 인물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잘 조율한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기기도 하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방대하면서도 독특한 문체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 담아놓았다. 그 안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사회문제들이 보완되지 않고 더 격렬해져서 안타까웠다. 독자를 우울함 속으로 밀어 넣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한 순간에 설 수도 없을 만큼 나약하고 힘 없는 개인의 삶을 통해 통해 국경과 인종을 넘어 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와 개인의 고충까지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