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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전작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들>을 읽고 나서, 그의 작품을 더 읽고 싶었다. 검색을 해보니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밖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았다. 바로 주문해서 받은 책은, 색이 약간 바랜 초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았다는 걸 알고나니 조금은 씁쓸해 졌지만, 이제라도 내 손에 쥐어 있는 이 책이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전작을 통해서 알게된 저자의 성장과 내면의 세계가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기에, 새로운 책에서는 어떠한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했다.
전작에서 저자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썼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좋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는데,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어 갔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을 지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한 순간에, 고모의 옷장 깊숙히 들어 있는 아버지의 편지 백여 통이 발견된 것이다.
그 편지들은 아버지가 모로코에서 군복무를 할 당시에 가족들에게 쓴 편지였다. 저자는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될 한 남자의 젊은 적 시절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죽음에 대해서 불안에 떨때도, 현재 자신이 있으므로 그 남자가 죽지 않을 거라면서 편지를 읽어 나갔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아버지의 편지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모로코에서의 군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는 더 이상의 세세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 편지를 통해 자신도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한 것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아버지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 책은 전편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추가한 것이고, 아버지의 존재를 부각시키므로써 자신의 온전함을 드러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아왔는 증거. 그리고 행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원에 딸려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가톨릭이었던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신부가 되기를 꿈꾸었다. 신부가 되면 오지로 순례를 떠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던 그에게 철학선생 샤를르 블랑셰와의 만남은 인생에서 대변혁을 가져온다. 그를 통해 문학에서부터 삶까지를 넘나들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또한 캐나다로 일 년동안 종교공동체에 들어가 수련을 받는 동안 그는 점차 신부가 되겠다는 꿈에서 자신이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 <알제리 전투>를 보고 충격을 받고, 군복을 입은 군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속에 공익요원의 자격으로 알제리로 떠난다. 그곳에서 배움에 굶주린 청소년들에게 기초를 가르쳤다. 어느정도의 속죄의 심정으로 알제리를 향한 것이었는데, 그곳은 아버지가 젊을적 군복부를 했던 모로코와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또다른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가 돌아온 프랑스는 혼란스러웠다. 혁명이 휩쓸고 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자유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부가 되겠다는 그의 꿈이 사라졌으니 먹고 살아야했다. 별 경력이 없는 그는 임금이 형편없는 일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밥 딜런의 음악을 듣게 되고, 그는 밥 딜런에 심하게 빠지게 된다. 밥 딜런과 관계된 모든 것을 듣고, 읽던 그는 밥 딜런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맘 먹는다. 가정교사로 있던 곳의 하녀방에서 밥 딜런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의외로 그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밥 딜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는 삶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다른 욕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얼마나 드러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는 무언의 메세지를 전하는 듯 했다. 어쩌면 회한이 깊이 남아 있는 추억을 꺼내면서 많은 좌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염려와는 다르게 저자는 꿋꿋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고, 삶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죄책감이나 후회보다는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모습이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향해 나가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