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눈을 뜨니 방이 캄캄했다. 날씨가 흐린가 보다 하고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왠지 모를 착찹함을 가져온다. 하루가 더 길 것이라는 무언의 예감 때문이다.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오늘 쓸 리뷰 책을 골랐다. <체실 비치에서>를 집어 들다, 책 내용이 떠올라 손길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책 겉표지를 한참을 바라봐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울함이 그득했던 책. 내가 접해 있는 세계와 결코 엮고 싶지 않았고,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일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결혼.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쁨에 넘쳐야 할 둘 만의 결혼 첫 날. 에드워드와 플레렌스에게는 가장 최악의 날로 기억되고 말았다. 도무지 문제가 뭐냐고 말하기에 애매모호한 그들의 하루.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책의 시작은 그들이 결혼을 해서 묵게될 호텔에서부터 시작한다. 저녁 식사를 하며 일련의 회상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작은 평탄해 보였을지 몰라도, 왠지 모를 불안이 서려 있었다. 어느 젊은이들의 인생의 전환점을 지켜본다는 것으로는 대답이 될 수 없는 불안감. 그런 불안감은 조금씩 드러나고 축약되어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터졌을 때는, 씁쓸하고 우울할 뿐이었다. 안타까움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지고 있었던 답답함이 조금 가라 앉는 정도였을 뿐, 마음이 한없이 시려지고 있었다.

 

  그들은 결혼 첫날에 헤어졌다. 최고의 순간인 동시에, 최악의 순간을 모두 맞이한 날이었다. 무엇 때문에? 과연 무엇 때문에 그들은 헤어졌던 것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첫날 밤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서로 사랑 했지만, 감정 표현 방식과 원하는 것이 달랐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한낱 에피소드로 치부해 버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쳐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꼬여만 가는 각자의 단상들이 숨막혔다. 그럴꺼면 왜 결혼을 했냐는 악다구니는 통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남녀의 관계가 자유분방하지 못한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서로의 생각을 서슴없이 털어놓지 못한 것까지 배경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일부러 상처를 주며 결별을 해놓곤, 서로를 그리워 하는 것까지 철저히 모르게 살아간 두 사람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다. 아름답다, 가슴아프다, 안타깝다라는 수식어는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음에도 행하지 않는 그들이 매정하다고 생각한다. 감정만으로,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지만, 그렇기에 더 답답함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나를 뒤로한 채, 저자는 비교적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담담함을 지켜 보는 것 조차 맘에 들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 처지. 어쩌면 자신은 담담하게 지켜보는 척 하면서, 뛰어난 정밀 묘사로 인해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을 모두 시켜버린 건지도 모른다. 지켜보는 입장에 익숙한 나같은 독자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감정이 들어올때면, 흥분하고, 우울해하고,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으니 말이다. 서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의 상반됨과, 성장 배경의 다름들이 때로는 서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그들이 당면한 현실을 비켜갈 수 없었다. 첫날 밤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신랑은 순수한 걱정을 하고 있는 반면, 신부는 남녀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현실이 어떠한 이야기를 만나더라도 잊혀질 수 없게 했다. 그들의 사랑이 순탄하지 않음을 예감하면서도, 결말로 가고 싶지 않고, 멈추고 싶지도 않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의 복잡한 심정은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 감정을 내게 이입시켜 버렸고, 나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첫 날밤과, 내면적인 이유를 설명해 가기 위해 꿰어맞춰진 이야기 속에서도 기운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헤어졌다는 사실이, 서로를 그리워 하는 것을 서로가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아프게 이별했고, 그 이후에는 더 아픈 사랑을 하며 삶의 환희를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허무감이야말로 삶에서 의지를 떨어트리는 치명적인 경험이다.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때는 세월이 허무할 정도로 많이 흐른 뒤였다. 그 뒤의 인생은 너무나 간결하게 드러나 있었기에 씁쓸한 감정에 짐을 더 드리울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이 재결합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를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 그들에게 질타를 하고 있고, 용기를 내어 다가가지 못한 행위에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때문일까. 나는 왜 이렇게 책 내용이 우울하다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까. 대리만족을 얻으려 했던 사랑의 달콤함에서 쓴맛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그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체실 비치에서의 기억이, 서로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데서 오는 처절함 때문이다. 플로렌스가 흐릿한 점이 될 때까지 사라져 가느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워드. 에드워드를 남겨 두고 뒤 돌아 보지 않고 자갈길을 걸어 갔던 플로렌스. 그때부터 이미 그들은 체실 비치에서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좀 더 따뜻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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