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3년 전에 읽은 책을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헌책방 구경 갔다 눈에 띄길래 사왔다고 했다. 여기저기 세월의 때가 묻어 있고, 누군가에게 쓴 편지가 씌여 있는 책을 보고 첫 반응은 심드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을 한 번 밖에 읽지 않은 나의 독서 습관 때문이었다. 종종 필요에 의해서 두 번씩 읽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번 읽고 말기에 달갑지 않았다. 그렇게 석달을 썩히다 책장 정리를 하다 보니 그제서야 눈에 들어 왔다. 먼지를 털어 내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감흥을 기대하기 힘든게 반복해서 읽을 때의 느낌이다. 하지만 처음 읽다가 지나쳐 버린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좀 더 여유롭게 읽을 수 있다고나 할까. 스토리를 알고 있으니 좀 더 곁눈질하며 읽을 수 있었다. <우동 한그릇>도 그랬다. 마음이 조금은 착찹한 상태에서 읽어서인지 책을 읽다 울컥하고 말았다.

 

  해마다 섣달 그믐을 우동을 먹으며 보내는 손님들로 바쁜 북해정에, 세 모자가 찾아와 우동 일인분을 주문한다. 주인은 일인분 반을 내어주고, 그 모자는 섣달 그믐에 빠짐없이 찾아와 우동 일인분을 먹고 갔다. 얼핏봐도 넉넉치 못한 세 모자가 서로를 위하며 우동을 나눠 먹는 모습은 북해정 주인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그 뒤부터 북해정에서는 섣달 그믐이 되면 세 모자를 기다리게 되었다. 사정이 넉넉치 못한 그들을 위해 오른 가격표도 다시 바꾸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 좀 더 자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는 여전히 부족하게 우동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간 어려웠던 속내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북해정 주인을 감동 시켰다. 그때부터 <우동 한그릇>의 이야기는 퍼져나가 그 자리는 유명해졌다. 하지만 세 모자는 몇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가게를 넓히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북해정은 그 자리를 예약석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그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십년이 흐른 섣달 그믐, 그 가게로 세 모자가 찾아온다. 이미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알만큼 유명해진 그 모자를 위해 북해정 주인은 정성껏 우동을 준비하고, 그들은 그제야 사람 수에 맞춘 우동을 시켰다. 그동안 그들이 오지 못한 사정을 전해 듣은 북해정은 감동이 넘쳐난다.

 

  <우동 한그릇>의 주인공은 당연 세 모자라고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읽고 보니 숨겨져 있던 북해정 주인의 마음이 보였다. 행색이 초라해도 따가운 눈빛을 보내지 않고, 넉넉하게 우동을 만들어 준 주인. 불편해 할까봐 인원대로 우동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을 눌렀던 주인. 그들의 마음을 처음 읽을 때는 보지 못했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북해정 주인과,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는 세 모자의 모습이 어우러진 것을 이제서야 발견한 것이다. 십 년이 지나도 그 일을 기억하며 기다리는 주인이 있을까? 십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찾아와서 우동을 먹는 사람들이 있을까? 마음이 가는대로 했을지라도, 소중한 추억과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마음을 지나칠 수 없었다. <마지막 손님>의 게이꼬처럼.

 

   과자점 <춘추암>에서 일하는 게이꼬는 아픈 어머니와 많은 동생들을 돌보며 일하는 소녀이다. 그녀는 자신의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그런 그녀는 가게를 위해서도, 가게에 오는 손님을 위해서도 언제나 헌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위해 먼 거리에서 과자를 사러 온 손님이 찾아온다. 그녀는 손수 과자를 담아주며,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이 일하는 과자점의 과자를 드시고 싶다는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라며 값을 받지 않는다. 과자값을 자신이 채워 넣으면서도 그녀는 손님의 어머니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특별 주문한 과자를 장례식에 전해 주고 온다. 그 일을 지켜본 손님은 게이꼬의 행동을 높이 사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그녀를 위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홍보 신문에 싣는다. 그 일로 인해 <춘추암>에서도 그녀가 본보기가 되고, 그녀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비난했던 단골 손님도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에 대해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니 하나또 고바꼬의 <돈꽃>이 생각난다. 네 권으로 이루어진 책 내용은 무일푼의 처녀가 상인으로 성공해가는 내용이었다. 그 책을 읽을 때나 <마지막 손님>을 읽을 때나 드는 마음은 거부감이었다. 일본답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면에 자리하는 헌신의 마음을 외면한 행위였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주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혹은, 주위를 감동시키고도 남은 헌신을 보여줬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전자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진 채, 본질을 외면하고 겉핥기만 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헌신을 누굴 위해 해본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없었고, 그런 열정조차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헌신하게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였을까?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서, 자신의 투명한 마음을 좇았을 뿐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기본적인 마음에서 오는 감동이라는 산물이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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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1-05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의 책을 빌려갔던 사람이 잃어버려서 이 책으로 다시 샀죠. 님께 땡스투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나도 아직 안 읽고 있는데 리뷰를 보니 다시 봐야겠군요.^^

안녕반짝 2008-11-0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번 읽고 나니 다르게 보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