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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정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책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도 심란한 터라 책장 정리를 했다. 우선 안 읽은 책과 읽은 책들을 보기 쉽게 구분하고, 장르별로 나눴다. 책을 읽을때마다 장르별로 정리 해서인지 읽은 책이 꽂힌 책장은 정리할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안 읽은 책이 꽂힌 책장은 어수선해서 정리가 필요했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보였다. 겸사겸사 시작한 책장 정리였는데, 책들을 빨리 읽고 다른 이에게 나줘 주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은 <질문상자> 였다. 제목부터 독특했지만,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보는 것처럼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어 보여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다.
우연히 웹상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 책으로도 내게 되었다는 저자는 시인이었다. 질문의 다양함 때문에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는 저자는 이 책이 자신만의 책은 아니라고 했다. 질문의 내용이나 다양한 연령층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과, 재치를 요하는 질문들이 많았기에 저자의 역량을 높이 살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질문을 받고 지혜로 답을 해주는 모습 때문이었다. 가령 눈물을 글썽거리며 "왜 사람은 죽어? 난 죽기 싫거든."이라고 질문하는 6살의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아이 대신 질문했던 엄마에게 저자는 자신이라면 아이를 꼭 껴안고 울겠다며, 마음과 몸을 사용하여 대답하라고 말했다. 거기다 즐겁게 대화하는 법,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흔들리는 마음을 조절 하는 법등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의 답도 성의껏 해주고 있었다.
엉뚱한 질문들도 많았다. 바구니에서 비죽 나온 것이 바게트라면 폼이 나는데, 대파는 폼이 안난다는 질문에 대파를 멋지게 들 수 있는 건설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저자. 우주인이 있을까란 질문에 당신도 그 중 한명이라고 대답하고, 그물 속에 들어오는 벌레들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독려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과 저자의 대답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했다. 쓰잘데기 없고, 허무맹랑 하고, 웃기고 재치있다는 생각 등 그들의 상황을 구경하는 입장에서 갖게되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내가 가진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시의 주제로 담을 수 있는 시인이기에 그러한 대답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을까.
책을 쭉쭉 읽어 나가다 보면 가끔 나를 멈칫 하게 하는 대답들이 들려오는 것들도 있었다. 보통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의 언어 주체인 시인은 진위에 대한 책임은 없고 말의 기교에 대한 책임이 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 시각을 가졌기에, 이 책에서도 시인으로서의 기교를 부릴 수 있는게 아니였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감이 없다는 질문에는 '자신감이란 스스로 가질 수 있는게 아니라,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라는 대답에서는 멍해져 버렸다. 자신감이 충만해야 할 현재의 내게 너무나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결과물을 내놓고 나와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해야 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짧은 질문과 역시나 짧은 대답 속에서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시간이 참으로 귀중하게 다가왔다.
어찌보면 이 책 속의 질문은 꼭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유일무이한 삶에서 남겨지는 잔상들을 꺼낸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끔은 일상의 흐름을 멈춘 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이쿠를 읽는 다는 느낌을 가져도 되고, 일본 사람들의 상상력을 들춰본다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보면 좋을 것 같다. 모르지 않는가. 그 안에서 기대 하지 않던 대답을 발견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