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별 수업 - 이별이 가르쳐주는 삶의 의미
폴라 다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마음이 울적했다. 계기만 주어 진다면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마음이 착찹했다. 그런 기분을 어쩌지 못해 누웠는데, 책상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지인이 선물해준 <이별 수업>이었다. 읽을 책이 산더미라 언제 읽게 될지 몰라 방치했는데, 울적한 마음 때문인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눈물 때문에 읽기를 자주 멈춰야 했다. 책을 펼치고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흐릿해지는 글자 사이를 헤메기만 했다. 저릿해지는 마음까지 보태져 읽기를 자꾸 방해받고 말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해 봤다면, 그제서야 타인의 죽음이 보이는 법이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 버렸던 타인의 고통이라면, 이제는 조금씩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음주운전자로 인해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은 저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지금껏 독단적인 위로를 받았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서로간의 위로가 가능했다. 자기치유적인 성격을 무시할 수 없는 저자의 고백은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은 아프니 무조건 나의 위로만 받으라는 세뇌가 아닌, 저자와 독자가 무언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고 있었다. 도피적인 고백, 피상적인 고백으로 이루어 졌다면 금새 식상해졌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지지부진하게 늘어놓는 것도 아니였고, 타인의 고통이 작다고 무시하는 마음 또한 없었다. 단지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들을 담담하게 써내려 갔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슬픔들이 나를 더 아프게 찔러대는 것 같았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위로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전달 되고 있었다.
상담 치유사였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감당해야 할 때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고 당시 뱃속에 있었던 딸을 양육하고, 재혼에 실패한 그녀에게 당면한 고통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삶을 비판하려 들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팍팍한 인생이었다.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갔다. 그런 일련의 기록들과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서 나온 책이 <이별 수업>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익숙한 모리 교수와의 만남도 특별하지만,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된 이유는 더 큰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 오는 위로, 현재의 위치를 떠나 인간대 인간으로 고통을 나누었던 모습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재소자들과 나눴던 고통과 우정, 모리 교수의 변화를 지켜본 감회, 자신이 치유했던 소년과의 재회가 남달랐다. 저자가 남편과 아이를 잃고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이 치유했던 소년이 청년이 되어 찾아온 일이 있었다. 청년은 저자의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곁에 있어 주었으니, 이제는 자신이 곁에 있어 주겠노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을까. 마음과 마음을 나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때문에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감동적으로 읽은 터라 모리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모리 교수는 좀 달랐다. 우리가 몰랐던 모리 교수의 진솔한 부분부터 변화해 가는 모습까지 담담하고 소박하게 씌여 있었다. 자신이 앓게 된 병으로 인해 인생의 참 맛을 알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삶의 끝을 향해 가는 병자가 아닌, 끝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변화하려 애썼던 교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다. 자신이 죽게 되면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모리 교수와, 저자가 만난 모리 교수의 색깔이 다를 것임을 알기에 그런 부탁을 했는지도 모른다. 첫 만남부터 삐딱했던 모리 교수와,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아가던 저자가 서서히 융화가 되어 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어쩌면 용기를 얻으라는 메세지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가 상처와 고통들을 치유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자신이 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은 이미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별 수업>이 아닌, <희망 수업>이라고 수정하고 싶을 정도로 인생에서 맛보게 되는 온갖 감정들이 이 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내 입에 맞는 맛을 골라가며 삶을 살순 없지만, 자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온전히 전달 되길 바랄 뿐이다. 타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그 삶 속에서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