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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김향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아둔 적립금을 싹싹 긁어모아 이 책을 구입했다. 다른 책보다 사이즈가 커서 더 궁금했던 책이었다.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작은 책으로 구경해도 멋지지만, 이 책으로 정원을 구경하니 아찔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전에 읽은 <행복한 사람 타샤튜더>에서는 타샤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제된 느낌으로 표현했다면,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었다. 뉴햄프셔에서 살다 버몬트 주에 있는 정원을 가꾸기까지의 과정이었다. 1971년, 타샤 할머니는 20년 후의 정원을 생각하고 땅을 일구었다. 타샤 할머니에게는 정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책의 초반은 버몬트 주의 땅에서 큰 아들 세스와 함께 집을 짓고 정원을 다듬는 모습이 나온다. 지금의 정원을 봐서 그런지 초기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절대 뚝딱 하고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땅을 사고, 평지를 다듬고, 집을 짓고, 그 넓은 땅에 나무와 화초를 하나하나 심은 손길과 세월의 흐름이 있었기에 현재의 정원이 만들어 진 것이다. 타샤 할머니가 어떤 틀을 갖춰놓고 정원을 가꾼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과정 속에서 습득한 지혜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정원을 꾸몄기에 지금의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는 철저히 식물들의 입장을 생각했다. 토양과 지역의 특색을 알아 어떻게 해야 식물이 기뻐하고 좋아할지를 생각한 분이셨다. 보통 사람들은 화분 하나를 가꾸더라도 자신이 보기 좋은 위치와 환경에서 기르려고 하는데, 타샤 할머니는 식물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식물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났고 정원의 일부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꽃이 마르지 않았고, 겨울도 겨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가꾸고 함께 살아왔기에 꽃이 언제 피는지, 무슨 나무인지 일일이 설명을 해 주는 모습에서 애정어린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꽃이 그 꽃 같은데 할머니는 색깔까지 운운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말해주고 있었다. 흙의 쏠림을 돌담으로 처리한 것을 자화자찬 하면서, 어느 정원과 닮지 않은 자신만의 정원을 칭찬하는 타샤 할머니가 젠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였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모습. 자신이 지켜본 과정을 친절히 알려주었던 모습. 그 모습이 타샤 할머니를 순수하게 만들었다. 정원에 마음을 빼앗긴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이 책에서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맘껏 구경할 수는 있지만, 할머니가 어떻게 정원을 일구는지에 대한 자세함은 없다. 가령 2000개의 구근을 심으면서 삽자루가 부러졌다든가, 물을 주는 어려움이 있다던가 그런 에피소드는 없다. 간간히 정원을 가꾸는 어려움을 말해 주긴 하지만 타샤 할머니에게는 그런 것조차 즐거움으로 보인다. 구근을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넙죽 엎드려서 일하기 때문에 커다란 고양이라도 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앞에서 어떤 불평을 들을 수 있겠는가. 타샤 할머니의 정원 이야기는 어느 정도 완성된 이야기라서 세세함을 기대했다면 실망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꽃과 나무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향기로운 이야기다. 마음에 드는 식물을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심고, 여러해살이 화초를 좋아하고, 땅이 반기는 식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타샤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정원을 구경하고, 꽃과 나무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어느새 타샤 할머니의 정원 속에 솟아 있는 꽃이 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을 때 쯤 타샤 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얼핏 기사를 본 것 같기도 했지만 아니길 바랐다. 검색을 해보니 올 6월에 돌아가신 걸로 나왔다. 나는 이렇게 할머니가 일구어 놓은 정원을 맘껏 구경하는데, 할머니는 지상낙원을 일구고 하늘낙원으로 가셨다니. 좀 더 빨리 타샤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타샤 할머니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오늘도 정원 어딘가를 일구고 있을 할머니를 상상할 수 없어 서운했다. 지금껏 할머니가 가꾸어 온 정원이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 했기에 정원의 모든 나무와 식물들이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할거라 생각한다. 할머니가 없는 정원은 왠지 허전한 느낌이다. 스스로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듯이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안한 삶의 방식을 선사하고 간 타샤 할머니. 왠지 하늘나라에서도 꽃을 가꾸고 있을 것 같지만, 지상에 낙원을 남겨 놓고 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