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갈의 향기 - 황금이삭 2
이시영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지인과 밥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지인이 시 한편을 들려 주었다.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서정주가 술자리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룬 시였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그 시가 실린 시집을 사달라고 했다. 그 뒤로 잊어먹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책이 한 권 배달되어 왔다. 전에 말했던 시가 든 시집을 찾았다며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아아, 감동의 물결. 내가 흘린 말을 주워 담아 깜짝 놀래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하루르 살아가는 힘을 얻곤 한다. 그 시집이 바로 <아르갈의 향기>이다. 책을 받자마다 지인이 얘기해 주었던 시를 찾아 보았다. <젊은 동리>라는 시였는데, 직접 읽고 나니 젊은 동리와 젊은 미당이 술자리에서 대화했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오랜만에 시를 읽는 즐거움에 빠지고 있었다.

 

  시 한 편 때문에 시집을 사 본게 얼마만이던가.  한 곡의 노래가 좋아 음반을 사본적은 자주여도 시 한 편 때문에 시집을 사본 적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내가 직접 산 시집은 아니지만). <젊은 동리>를 여러 번을 읽고 나니 남은 건 다른 시였다. 깊은 밤, 창문을 열고 가을이 오는 냄새를 담뿍 맡으며 <아르갈의 향기>를 펼쳤다. 아르갈이 무슨 뜻일까 궁금하던 차였는데, 책을 펼치자 마자 아르갈의 정체가 드러났다. 몽골에서 귀한 연료로 쓰이는 말린 쏘똥이 아르갈이었다. 한참 가을 향기를 만끽하며 시를 느끼려 하던 내게 소똥이 아르갈이라고 하니,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tv에서  아르갈이 어떻게 쓰이는지 본 기억이 있어 그 향기가 고약할거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서문에서 시인이 말했듯이 저녁 무렵 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려 온 몽골 소년들은 어머니의 겔에서 피어오르는 이 연기를 보고 지극한 평화를 느낀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린시절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저녁 먹으라고 악다구니를 쓰던 엄마가 무서워 부리나케 달려가면서도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저녁밥 짓던 연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그런 것이 아닐까.

 

  아르갈을 알고, 엄마를 떠 올리고, 어린시절을 좇다보니 추억이 더 또렷해진 느낌이다. 시인 또한 고향인 전남 구례의 이야기며, 지인들의 이야기로 시를 채워가고 있었기에 추억의 농도는 짙어지고 있었다. 지금껏 어려운 시를 많이 접해서인지 서정시를 오랜만에 대하는 나도 즐거워졌다. 시인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의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이시영 시인의 시를 읽고 있자니 시인의 안목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기도 하고, 주변에서 들은 얘기를 시로 풀어 놓기도 한다. 시인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시를 옮기거나, 시대에 관한 시들은 종종 나의 이해력을 요구할 때도 있었다. 다시 곱씹어봐도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멍하니 시를 바라보며 무슨 뜻일까를 생각하며 멍하게 있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좋았다. 읽힘으로 따지자면 금방 읽어 버릴 수 있는게 시다. 그 안에서 시인의 의도를 알아채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해석을 내 놓더라도 그게 시를 읽는 과정안에 포함된 매력이다. 내가 이시영 시인의 시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잠시나마 고민하는 시간이 그래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시를 쓰는 건 제쳐두고라도 시를 읽는 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멋모르고 시가 좋다고 시를 읽어대다가 어느 순간 시의 높은 경지를 깨닫고 나니 그 전처럼 자유롭게 시에 다가가지 못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집을 만날 때면 내가 시를 좋아하던 시절로 들어가게 된다. 내 주변의 이야기들, 혹은 다른 사람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일. 그런 일이 자유로운 것이 서정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가을로 접어드는 초입에 이시영의 시를 읽었던 것이 기대 이상으로 다가왔다. 시는 깊은 밤에 읽어야 제맛이 나고, 초가을에 읽어야 찰지듯이 한껏 물이 오를 때 만난 시는 포근했다. 시인의 모든 경험과 내면 세계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경험들이 모두 내 것인양 나를 대입 시켰던 밤이었다. 한 편의 시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시인. 시를 통해 계절을 느꼈고, 시를 통해 깊은 밤이 정적을 알았던 시간. 시를 읽었기에 하룻밤의 꿈일지라도 행복했던 밤이었다.

 

 

 

 

젊은 동리

 

                      - 이시형

 

 

 

  술이 거나해지자 젊은 동리가 젊은 미당 앞에서 어젯밤에

잠 아니와서 지었다는 자작시 한 수를 낭송했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 미당이 들고 있던 술잔을 탁 내려놓

고 무릎을 치며 탄복해 마지 않았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

는 것을......이라. 내 이제야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컸

다. 그러자 동리가 그 대춧빛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대꾸했

다. "아이다 이 사람아.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

이다." 미당이 나머지 한 손으로 술상을 쾅 내리치면서 소리

쳤다. "됐네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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