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 때문에 김연수 소설은 어렵다 생각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집어든 소설은 <꾿빠이 이상> 이었고 역시 녹록치 않아 소문의 진상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고 나니 김연수 소설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후련함을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생각들이 나를 파고들어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책의 시작은 우울했다. 기뻐야 할 결혼식임에도 신랑 광수는 자꾸만 신부 선영이 들고 있던 부케의 꽃대에 집착한다. 한 때 선영의 애인이었던 진우가 결혼식 직전, 선영의 곁에 머문 뒤로 꽃대가 꺽였다 생각한 광수는 그 꽃대를 시작으로 자신과 광수, 선영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더불어 질투어린 시선과, 의심까지도 서슴없이.

 

  책 제목과 세 주인공의 얽힘을 알았을 때, 나만의 스토리는 이미 구축되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자신감으로 선영과 진우의 관계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나는 지지부진한 시선을 던졌다. 광수의 우울한 고백에서 복선을 만났다 생각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쫓는 것이 흥미롭지 않았다. 질투와 의심으로 얼룩져 가는 광수를 보는 것이 안쓰러웠고, 사랑에 관한 정체성의 모호함을 잔뜩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나같은 단순한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독특하게 풀어 나갔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점에는 광수가 있었기에 주인공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주인공은 광수도 아니었고, 진우나 선영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은 교묘히 섞인 사랑의 요소 역할에 충실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주요 인물에게 세세히 박아 놓은 작가의 사랑관이 눈길을 끌었다. 광수를 중심으로 점철되어지던 사랑관이 선영과 진우를 통해 새롭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혼한 선영의 곁을 멤돌면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를 외치며 광수의 존재를 생각해 주지 않은 진우. 진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의 흔들림을 발견했다 믿는 남자 광수.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주입시키는 것 같은 여자 선영. 이 셋의 모습은 또렷했다. 그리고 셋이 만들어 내는 사랑은 환상이라곤 존재 하지 않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었다. 그래서 선영의 고백에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되묻는 광수가 당황했던 것일까.

 

  저자는 마치 언어의 유희를 즐기듯 그들의 이야기 속에 생소한 어휘를 펼쳐 놓기도 한다. 세 사람의 사랑과 맞물리듯 펼쳐지는 생소한 어휘들은 현재와 발견되지 못한 세계를 가늠하듯 맛깔나게 버무려지고 있었다. 저자가 펼쳐놓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은 세 인물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저자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냈다는 뜻이라고. 그들은 사랑을 찾아 헤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에 헤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저자의 사랑관이 녹아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구축시키는 것. 구축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점검해 보는 것. 그것이 저자가 연애소설을 쓴 이유가 아닐까. 책 곳곳에 시대의 패러디를 해 놓은 저자의 의도는 어쩌면 타인의 사랑을 쫓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에 자신의 이름을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사랑이라니, 선아야>. 아주 어색한 제목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랑 얘기가 펼쳐질 것 같아 조금은 두려워 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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