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름이면 으레 출판되는 책 가운데 하나는 여행에 관한 책이다. 휴가와 방학을 이용해서 좀 더 알차게 보내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극을 주는 셈이다. 타인의 여행을 통해 한번쯤 그런 여행을 꿈 꿔보는 것. 책이기에 가능하고, 여름이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 '여행'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한번 더 떠들러 보고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인가 보다. 나 또한 생소한 작가를 마주하면서도 그와의 만남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여행'이라는 동경이 존재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땅히 여행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김연수라는 작가와의 첫 대면을 시작했다.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소문만 들어 왔기에 이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게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첫 작품으로 고른 것이 산문집이고, 어쩌면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알아 간다는 느낌보다 여행 이야기를 괜찮은 소문이 퍼지고 있는 작가가 썼다는데에 의의를 두고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저자가 여행한 곳에 온 신경이 맞춰졌다.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떠한 배경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곳의 풍경은 어떤지 보다는, 저자가 머문곳이 어디인지 밖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행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으리으리한 곳(그곳이 어디일까.)을 꿈꾸기 마련이기에 첫 여행지로 러시아가 소개되었기에 갸우뚱 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여행을 목적으로 뒀다기 보다는 이런이런 연유로 머무르게 된 계기를 소개하고 있어 내 안에 실망감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책 제목이 <여행할 권리> 에다 산문집 임에도 나는 오로지 여행만을 바라보고 싶었다. 저자의 시시콜콜한 내면의 소리들이 한 낮의 매미떼의 울음소리처럼 왱왱댈 뿐이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게 아니라구요 소리를 치면서도 저자의 뒤를 좇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책의 첫장을 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겨우 이것 뿐이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은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내가 저자의 뒤를 좇는 이유는 어쩜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권리라는 거창한 제목을 걸어놓고 겨우 이것 뿐인가, 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적으로 내 욕심만을 부린 채 이 책을 보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이 책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이라는 단어를 잠시 밀쳐두는 것이었다. 여행을 밀쳐두고 ~할 권리에 중점을 둔 채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을 빼니 여행 대신 들어갈 단어는 무궁무진 했다. 나는 저자의 세계를 알아야 할 권리에 마음을 더 쏟기로 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랬더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꿈꾸었던, 두려워 마지 않았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드러나는 행위로 내면의 세계를 탐하는 시간,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저자가 주로 여행한 곳은 관광지와는 상관이 없이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개척한 공간이 대부분이었다. 어학연수를 위해서, 다큐멘터리 찍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저자의 흔적을 찾아서, 혹은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서 떠난 길이였기에 관광지와는 무관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리를 통해 문학과의 연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학의 연결 고리를 좇다 보면 민족이 보였고, 민족을 생각하다 보면 그 안에 내포된 한 인간상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어울려 살려고 애쓰는 수 많은 사람들이 많아 당혹스러 웠다. 섞이려고 하지만 섞이지 못할 때의 고통, 외면 받아온 세월, 오해로 얼룩진 상처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현재 있는 위치가 헷갈렸다. 버클리 캠퍼스와 UC빌리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 온갖 인종을 만나다 보면 안드로메다 성운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저자의 느낌처럼 낯선 세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으로 연결되고 같은 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낯선 세계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낯설 듯, 공통점은 찾지 못한 채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었다.

 

  저자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어의 통함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소통이 아닌 내 앞에 펼쳐진 것들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육안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것은 낯선 장소에 서 있는 두려움이 아니라 어느 곳을 가든지 만나게 되는 지울 수 없는 공허였다. 우리에게 잊혀진 지성인, 유용할 때만 불러들이는 한국 태생의 외국 작가, 타국에서 숨을 거둔 문학인 들을 만날 때면 동조할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오곤 했다. 한국을 벗어나면 스스로에게 드리워진 짐은 더 무거워지며 다시는 국내로 발길을 돌릴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뿜어내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상에 관한 글이었다. 이상 전집 세 권을 달랑 들고 이상의 뒤를 좇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도쿄행 비행기를 탔던 저자. 그가 알고자 했던 것, 그가 궁금했던 것, 그리고 이상의 내면으로 들어가 이상이 찾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더불어 안타까움과 정체모를 우울함이 나를 움켜쥐기도 했지만.

 

  이 책의 여행을 무어라 정의하긴 힘들다. 단순히 여행을 갈망하던 내가 이 책의 여행을 마쳤을 땐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공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곳을 누빈 것은 사실이나 그 어느 곳에서도 나를 올려놓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해서였을까? 나란 존재에 대한 미미함을 타인의 삶을 통해 보아버린 까닭일까?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의 잔재물은 이 책이 어떠한 책이냐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것과 동일했다. 차라리 단순한 여행을 꿈꾸게 해주었던 책이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함을 만난 느낌. 그 세계를 깊이 들어갔다온 느낌. 그러나 가벼운 여행을 마치고 나온 허무감은 없었다. 또한 한 작가와의 만남이 아주 훌륭했다는 만족감까지 얻었으니 색다른 ~할 권리를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겨우 이것 뿐인가" 라고 당당히 외치며 낯선 세계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지고 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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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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