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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 같아선 내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대도시처럼 사람이 바글거리고 차가 뒤엉켜 숨쉬기 힘든 동네도 아니건만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죄다 소음이고, 내 눈에 밟히는 것들은 모두 장애물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시만이라도 고요한 내 자신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것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걸까? 아니면 방법을 몰라서일까. 자신에게 솔직해 지지 않을 때 불신이 만들어 지는 법. 불신이 나를 향해 비죽 올라올 때 이 책을 만났다. 투명하기만 한 소금사막에서 과연 나의 얼굴을 비춰 볼 수 있을까?
테오의 전작이 좋아 이 책을 그냥 스쳐버릴 수가 없었다. 낯선 땅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케이프 타운을 다룬 전작은 여행지에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볼리비아로 갔다고 하니 잠시 어지러웠다. 아프리카에서 남미로 갑자기 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책 속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나의 상상력의 세계를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도 그랬지만 볼리비아라고 낯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볼리비아라하면 체 게바라가 숨을 거뒀던 곳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기에 약간의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테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갔고 부딪혔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을 테오는 자연스럽게 마주한 것이다. 낯선 곳에 가기, 부딪히기, 수 많은 난관을 두려워 하지 않기. 그 모든 걱정 때문에 여행을 하지 못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테오는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낯선 세계를 다녀왔다.
테오가 알려 줄 낯선 세계에 나는 너무 겁을 먹어 버린 것일까. 볼리비아를 여행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책을 꺼낸 탓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어 있었다. 저자가 펼쳐주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겁많은 탐험자처럼 경계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건 마치 가로로 묶인 책의 익숙하지 않은 형태에서 이 책이 어느만큼 달려 가고 있는지, 언제 끝날지를 가늠할 수 없어 겁을 먹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내가 마음을 놓으려 하면 다른 파트로 넘어가 버리고, 여행을 해보려 하면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른 채 테오는 자신의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여행 에세이긴 하지만 여행지에 목적을 두는 것보다 여행지의 모습을 그려내되, 항상 자신의 일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생각할 틈을 남겨둔다. 우리의 일상이 잘 있는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끔은 급작스럽게 저자는 독자에게 묻곤 한다. 어쩜 그런 방식 때문에 내 마음을 온전히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나의 일상을 통째로 버려둔 채 다른 세상을 만끽하려 했던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을 잊으면 다른 세상도 잘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저자가 여행한 장소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실에 충실해야 하지, 도피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몇몇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곳에 현혹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에 충실한 모습이였기에 도피를 목적으로 한 나는 어느 곳에도 내 마음 한 켠을 내려놓지 못했다.
저자는 현실을 포기하는 것은 여행자가 아니라고 했다. 여행자는 인생을 이해하고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 여행을 통해 일상을 정돈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더 나은 일상을 조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여행을 하지 않음에도 현실을 포기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소금사막에 비춰질 나의 모습이 두려워 뒤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상대의 눈에 나의 모습은 분명 이상하게 보일 것이기에 움츠려 들고 두려운 나를 감출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보여준 다른 세상을 속속들이 여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두려움을 깨치려고 했던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요한 곳으로 떠나더라도 내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 져야 한다. 그래야 낯선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더라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