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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력을 보면 무척 독특하다. 숫자로 사람의 면모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월등히 높은 아이큐와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란 저자를 보는 나의 첫 인상은 별 감흥이 없었다.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부터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 들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나니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보다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는 말에 점수를 더 주고 싶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그야말로 독특한 상상력과 sf적인 요소가 짙은 풍자는 70~80년대에 씌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일본의 역사극에 익살을 더한 단편들은 백퍼센트 공감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의식 저편에나 존재할 것 같은 소재들을 끄집어 내는 저자의 생각들은 기발했다. 시간이 가속도로 흘러가며, 담배를 피우는 인간을 처벌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마지막이 되고, 평행으로 되어버린 세계에 수없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과연 그의 글을 단순한 즐거움으로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일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독자 각자가 갖는 생각들에 일반화된 시각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에 무엇에 초점을 맞춰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저자가 뿜어내는 상상력에는 재미와 흥미로움이 있었지만, 그에 반한 독설과 야유를 고운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재미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저자의 뜻을 간파하며 읽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책이 바로 <최후의 끽연자>이다. 재미로만 읽기에는 어딘가 익숙한 모습들이 보이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그의 익살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상상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다. 어떠한 의도로 글을 썼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가 설정해 놓은 상황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노경의 타잔>에서는 더이상 영웅이 아닌 사악하게 변해버린 타잔을 그려냈던 모습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태연하게 악을 행하는 타잔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마음 깊이 숨기고 싶은 통쾌함이 있었다. 늘 영웅으로 그려지고 해피엔딩으로 기억되는 타잔의 모습을 뒤집어 보는 것. 그 모습이 유쾌하지 못하더라도 독특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그렇게 우리가 끄집어 내고 싶지 않은 부분, 현실이 된다면 거부할 것 같은 모습들을 드러내며 독자 스스로 긁을 수 없는 가려운 부분을 글을 통해 해소시켜 주고 있었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저자가 사회 비판을 목적으로 썼다기 보다는 글쓰기를 즐기며 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글을 읽다가 '아, 이 부분은 날카롭군.' 하며 읽기만 해도 충분하다. 시대를 넘어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그의 글에는 책이라는 매개물로 인한 독자와의 소통에 중점을 더 두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저자의 상상력 너머를 여행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자와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만남과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