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꺼내든 때는 환멸감으로 몸부림 치던 날이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어떠한 책도 읽어지지 않는 밤이였다. 책꽃이에서 책을 뺐다 넣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허탈감에 침대에 누워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버리는 구나' 탄식을 하며 습관대로 책꽃이의 빽빽한 책들을 멍하니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 책 꽃이 구석에 꽃혀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하루를 허무하게 마감하고 있는 나의 처지와 상반된 느낌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처음엔 시골의사 박경철님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기에 그의 책을 마주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신선함은 얼마 가지 않아 책 속에서 뿜어 내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감동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전작인 <행복한 동행>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은 메디컬 에세이가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만난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로 그분들을 '착한인생' 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소중한 이웃들의 삶에서 결정적 순간을 지켜본 '내레이터'의 입장이 될 뿐이라고 했지만 막상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내 마음은 격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사연들을 떠나 이 모든 이야기들을 만났을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레이터 열할밖에 못한다고 했지만, 저자가 쏟아놓은 이야기들은 저자의 마음을 거쳐 왔기에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그의 마음을 알아 챌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가슴 아파 하는지, 그가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차분하게 들렸던 그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많은 감정들을 분출하고 있었다.

 

  초반의 사연들 대부분은 결말이 뚜렷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삶에서 뚜렷한 결말이 있겠냐만은 꺼져가는 생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저자가 마무리 지은 글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떻게 삶이 이렇게 치열하다 못해 잔인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구구절절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 앞에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이 나의 상상으로 인해 일단락 지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들 앞에서 내가 너무 부끄러워 졌다.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치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치열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그들의 향후를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저자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달랐다고 할지라도 저자 또한 단 한줄로 그들의 삶을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아련히 남아 있는 사연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사라지지 않은 치열한 인생으로 말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착한 인생들과 그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이 아프게 느껴진다.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고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육체적인 고통이 크지 않더라도 삶의 고달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육체의 고통이 그들에게 매달려 있더라도 그 고통은 차마  삶의 주인공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들에게 육체의 고통은 삶의 치열함 앞에 늘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육체의 질고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고 해서 질고가 이긴 것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앞에서도 겸허히 받아 들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 속에서 그들은 육체의 질고에 절대 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타인으로 다가온 그들이지만, 저자를 비롯해서 그 모든 이야기를 마주하는 독자들에게까지 그들의 떠나감은 타인이 아닌 이웃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깊이 개입하지 못하는 그런 이웃.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 녹아 들고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사연들은 저자가 병원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지만, 저자의 개인적인 사연과 이야기도 많았다. 병원이라고 해서 죽음과 치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삶이였다. 그런 삶들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얽히는게 대부분이였지만, 그러한 관계를 떠나 저자와 함께 삶을 살았던 인연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메디컬 에세이가 아니라는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배경은 병원이 되었을지 몰라도 인생의 단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연들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 아파하고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아품을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게 사는 것, 꿈을 잃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픔을 희망으로 녹여내는 저자와 같은 의사가 있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웃에게 건강한 웃음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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