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네가 남긴 것 사계절 1318 문고 25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덮고 나니 가슴 속에 밀려 드는 먹먹함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온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이 느낌을 어찌해야 하는 걸까. 아, 아르네! 책을 읽는 내내 이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르네의 이름을 부를 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옮긴이 박종대님도 저며 오는 슬픔을 달랠길이 없다고 했다. 우리들의 편견과 아집 속에 스러져간 소년 아르네 때문이라고 했다. 도대체 아르네에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걸까.

 

  이 책은 아르네의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유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르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데, 책을 읽을 수록 아르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은 깔리지 않고, 아르네와의 추억을 더듬어가는 한스의 시각을 비춰 줄 뿐이다. 직접적인 아르네의 죽음의 언급은 피한 채, 유품을 정리하는 현재와 유품을 통한 아르네의 추억이 얽혀 12살 소년 아르네를 드러 낸다. 아르네는 여리고 상처가 있는 소년이다. 가족이 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아르네 뿐이다. 아르네와 친구였던 한스의 아빠가 아르네의 양육을 맡게 되어 한스네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한스는 그런 아르네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며, 늘 아르네의 편이 되어 주었다. 아르네가 고통의 기억에서 몸을 떨 때도, 친구들이 아르네를 따돌릴 때도 말이다.

 

  아르네는 뛰어난 아이였다. 공부를 잘 했고, 글도 잘 썼으며 월반을 할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였다. 그러나 아르네가 어떻게 해서 한스네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된 친구들은 아르네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르네가 어떻게 살아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내세워서가 아니라, 자신 보다 뛰어난 아르네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다름의 이유였다. 한스의 동생 라르스와 비프케 조차도 아르네에게 살갑게 굴지 않았고, 비프케에게 남다른 애정을 품었던 아르네의 마음을 알면서도 비프케는 아르네를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아르네는 뛰어난 학생이였기에 특별한 관심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다는 사실이 아르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한 따돌림은 아르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가족들의 생사 속에서 살아난 것도 아르네의 의지가 아니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또래의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다는 것은 12살의 아르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기 충분했다.

 

  아르네가 살던 곳은 폐선 처리장이였으므로 사내 아이들에게는 호기심과 놀이거리가 제공 되는 장소였다. 실로 책 속에 등장하는 모험과 놀이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쏟아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혹적인 것이였다. 아르네 또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보아왔던 바다의 풍경과 배에 관한 지식들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지만, 새로운 곳에서는 철저히 배척 당하고 만다. 오히려 자신의 뛰어남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생각했으니 아르네의 고충은 켜켜이 쌓여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르네에게 한스 외에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자신을 놀이에 끼워 줄 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철석같이 그 아이들을 믿었다. 늘 혼자 생활 하는 칼룩씨와 친구가 되는 것보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모르고 아이들은 아르네를 이용했다. 여행을 핑계로 도둑질을 했고, 나쁜 일에 아르네를 포함 시켰기에 칼룩씨가 다쳤고, 물건들이 사라졌다. 아르네는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잃어 버렸지만, 그 일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공모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아르네를 모른체 한다. 괴로움에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아르네는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르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르네와 같은 방을 썼던 한스가 아르네의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그 물건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려진다. 한스는 그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아르네의 표정, 몸짓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르네가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대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 얽혀 애절함을 더해 갔다. 한스도 아르네의 가족들도 아르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르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책은 끝이 난다. 이러한 결말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르네를 따돌린 아이들을 과연 내가 비난 할 수 있을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르네를 다그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아르네 같은 아이를 쉽게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네와 닮았던 아이들을 따돌렸던 내 자신도. 아르네의 스러짐 앞에서 깊이 반성해 본다. 내가 아르네를 그렇게 만든 것이고, 우리가 아르네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아르네 같은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조금 다르다고 다른 세상으로 밀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