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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월요일 아침은 정말 눈을 뜨기 싫다. 한주의 시작에 대한 부담감이 꿈틀거리며 나를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막상 출근 해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월요일을 한주의 통과의례로 보내야 하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월요일이든 한주든 모든 날들을 좀 더 즐겁게 보낼 수는 없는 걸까? 내가 만족스러워 하는 무언가를 할 때 처럼 일상이, 삶이 즐거울 수는 없는 걸까? 그다지 팍팍하지도 않는 일상을 가지고 너무 요란을 떨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뵈를레 씨를 보고 있자니 그가 느끼는 재미가 왜 나에겐 없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그의 재미를 온전히 닮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놀이로 봤고, 그가 놀이를 위해 행했던 모든 것들 속에는 잘못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은 뵈를뢰 씨의 편지로 시작 된다. 그리고 그 편지는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한 구성이 숨 쉴틈 없이 옥죄어 오는 느낌에 조금은 답답했지만,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저지른 사건 때문에 담당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무엇인지 몰라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 나갔던 것인데, 그의 편지는 점점 더 장황해 지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배제한 채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부터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시각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사건의 경황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흐려져 버렸고 뵈를뢰 씨의 언변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언변 속에서 내가 길을 헤메고, 혼란스러워 했음은 자명하다. 그가 우아한 척 하며 독설을 뱉어내는 모습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에 흥미를 잃은 것 또한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허무와 권태가 밀려왔다. 그가 진부한 말들을 늘어 놓았다는 것에서 느껴진 감정들이 아닌 그가 행한 놀이 속에서 이미 감지해 버린 것들이었다. 그가 아무리 신랄한 말투로 자신의 놀이를 설명하며, 돈, 권력, 청치에 대해서 논해도 그의 의견에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려는 행위로만 보였고, 무언가를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세상 살이에서의 놀이를 아무렇지 않은듯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그가 위대해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라는 직업 외에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함구한 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을 뱉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권태로움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 권태에 내가 빠져 버렸다. 그래서 그가 읊어대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신랄한 비판들이 진부했다. 또한 그에게 살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의 언변에 속아 그가 저지른 살인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과 놀이의 일환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쉽게 인정해 줘서는 안된다. 그는 자신의 합리화는 물론 타인을 끌어 들이려 했고 그의 의도는 결말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살인이였다는 것을 피력하는 것도 모자라 담당 변호사를 놀이에 끌여 들이려고 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흥미로울 거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아 했고 놀이 또한 끝내려 하지 않았다. 돈과 권력, 정치를 떠나 이젠 타인의 파멸을 노리는 것이다. 그가 담당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장황스럽고 온갖 얘기가 섞인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혹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 타당하는 말을 장황스럽게 늘어 놓았다는 것밖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틀린 목적으로 돈, 권력, 정치를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바라본 사회의 병폐를 간과할 수는 없었다. 마치 자신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 일부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자신 하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자신은 나폴레옹이 정복전쟁을 했던 것에 빗대어 인생 놀이를 감행한 것 뿐이라고 떳떳해 했다. 그 안에서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를 안쓰럽게 생각하기 이전에 내 안에 멤도는 이 씁쓸함은 무엇일까. 살인의 정황을 알겠다고 펼쳐 든 책 속에서 온갖 씁쓸한 맛을 다 맛본 기분이다. 그래서 그의 행위를 탓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의 놀이에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지 않기를 바랄 뿐, 좀 더 밝은 세상의 빛이 그가 드러낸 어둠을 걷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