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준 선물 마음이 자라는 나무 5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출근길에 보니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어젯밤 비에 우수수 떨어져 내린 것을 보았다. 떨어진 꽃잎을 보고 있자니 이제 완연한 봄이 오나보다 하며 마음이 새초롬 해졌다. 떨어진 꽃잎은 아쉽지만 푸른 잎이 돋아나는 벚나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듯 했다. 여름을 향해 한발짝 더 내딛는 힘찬 발걸음 속에 더 푸르른 잎을 만들어 내고 열매를 맺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이였다. 그렇기에 꽃잎이 떨어 졌다고 해서 서운해 하는 마음은 접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여름을 향해 가는 푸르른 나무들을 보며 한가지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다가올 여름을 유추해 보았지만, <여름이 준 선물> 이라는 책 얘기를 꺼내기 전에 여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서 다소 장황하게 얘기를 꺼내봤다. 내 마음 속에 퍼지는 감동과 따뜻함은 계절에 상관이 없이 간직되겠지만, 뜨거운 열기와 끈적함이 배어나는 여름을 상상하지 않고는 옅어져 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태양 만큼이나 내 마음 속에 기습적으로 들어와버린 세 아이와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여름이 배경이 되었을 때 더 깊이 각인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류, 모리는 같은 반 친구인 하라의 할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두려움에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다니는 학원 근처의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감시하는 일이었다. 삶에 의욕이라곤 전혀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감시하며 죽는 모습을 지켜 보자는 황당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삶에 의욕이 없긴 하지만 돌아가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일과를 지켜보다 보니 할아버지가 걱정이 돼 음식을 갔다 놓기도 하고, 마당에 쌓인 엄청난 쓰레기들을 줍다가 할아버지에게 쫓겨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할아버지는 조금씩 집안을 정리해 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매일매일 감시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주객이 전도되어 할아버지의 집을 서슴없이 드나들며 자질구레한 집안 일을 돕게 된다.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던 그 집에 세아이들의 북적거림이 활기를 더 해주고 있었다.

 

  세 아이는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잊은 채 자신들의 아지트인냥 할아버지 집에서 거의 매일매일 살았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주는 간식을 먹으며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주었지만, 그곳에서 공부도 하며 집안을 가꾸어 가기도 한다. 삭막했던 할아버지 집은 그들의 손길로 깔끔해져 갔고, 널찍한 마당에 코스모스 씨까지 뿌려 놓아 화사함까지 기대하게 되었다. 그들이 매일 할아버지 집에 드나드는 것을 또래의 친구들이 보고 놀리기도 하고 비야냥 거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것이 사명인냥 열심을 다해 할아버지 집을 드나들며 돕기를 서슴치 않았다. 아이들이 이런저런 일을 시켜도 큰 불평 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 또한 마음을 열어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도 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변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꽃놀이를 펼쳐준다. 저물어 가는 여름의 끝 자락에 세 아이들과 할아버지에겐 마음 속에 아롯이 새겨질 새로운 추억거리가 만들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축구부 합숙훈련을 떠난다. 합숙 훈련을 마치고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 간 그들은 숨을 거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자신들이 보고 싶었던 죽음과 죽은 사람의 모습도 보았지만 더 소중한 것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한 층 더 성숙 된 자신들을 만나게 되는 큰 경험을 한 셈이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저 세상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죽음의 세계를 편안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오히려 할아버지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내게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 보다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세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을 가고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흩어져 버리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평생토록 간직 될 것이라는 생각에 영원한 헤어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 앞에 처음부터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나와 다른 남과의 만남이 깊이 각인 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기도 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읽어 버린 이 이야기는 하룻밤의 꿈 같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내가 책을 읽은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 속에 따뜻함과 감동으로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후텁지근하고 더운 날씨에 짜증만 나던 여름이 이런 연유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여름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뜨거웠던 여름이 가을을 맞이 하게 되면서 선선함을 전해 주듯이 내 마음 속에도 그러한 강렬함과 잔잔함이 공존했기 때문이리라. 세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인해 내가 힘겨워하는 여름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바로 여름이 내게도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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