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TV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채널을 돌리다 고정이 되는 프로그램은 자연 다큐멘터리다. 그 중에서도 비다 속, 물 속의 상태계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에 관한 것이라면 관심을 많이 갖는 편이다. 관심이라고 해봤자 TV시청과 책을 보는게 고작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난 후에는 온 몸이 살아 쉼쉬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자연일기라는 제목이 정신을 팔지 않을 수 없었다. 숲 속 수의사의 일기라고 하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소설만 읽고 있던 나의 독서 성향에 한 줄기 빛같이 다가온 책이였다. 실제로 따뜻한 난로 곁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읽었던 시간은 현실을 잊을 정도의 다른 세상으로 이끌림을 받고 있었다.
저자는 홋카이도 동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수의사로 40여년을 살아온 분이다. 수의사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 보니, 동물들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 느껴지기도 했다. 동물들을 치료하며 재활을 거쳐 다시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일은 그가 할 수 있는 당연하고도 천부적인 일처럼 보였다. 동물이 다치거나 어미를 잃으면 마을 사람들이 무조건 저자의 집에 데려다 놓으니 식객이 한 두 마리가 아니였다. 안그래도 쪼들리는 살림에 식객이 늘어 부담스럽다는 말이 괜한 푸념으로 들렸었다. 그러나 식객들의 먹이를 따져보니 저자가 투덜댈만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육된 먹이를 줄 수도 없었다. 사시사철 저자가 먹이를 구하러 다녀야 하고, 어쩔때는 식객이 먹다 남은 음식이 식탁에 올라올 때도 있다고 하니 저자의 집은 정말 말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런 식객이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 밖에도 즐비해서 저자는 숨 쉴 틈이 없이 바쁘고 동물들 사이에서 기를 못 펴는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의 가족 또한 동물들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온 집안에 다치고 어미 잃은 동물들로 그득한데 가족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저자의 그런 생활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에피소드가 저자의 글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집에 앉아서 동물들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살피고 경험하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도 하며 사소한 전화 한통에도 달려가는 열정이 그득한 분이다. 철새가 왔다는 전화, 나비를 보았다는 전화, 꽃이 피었다는 전화에도 한달음에 달려가 사진을 찍고 즐거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의 직업이 수의사이긴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돌볼줄 알며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40여년 동안 수의사로 지내온 과정을 덜어 낸 그의 글 속에서는 소박함과 자연의 삶을 묵묵히 지켜 온 진솔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의 마을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에게 찾아오는 주변 사람들의 외모나 그가 만난 동물들과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머리 속에 자유자재로 그려 보며 작은 마을을 탐험 하고 있었다. 저자의 글과 사진을 통해서 그런 상상이 가능 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어딘가에도 그런 공간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단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쉬며 사는 법을 몰라서 파괴할 뿐, 얼마든지 공존하며 살 수 있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나마 어렸을 때 두메산골에서 살아서 자연을 경외하는 본능적인 감정이 녹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릴적에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씩 흐르고 삶이 팍팍해져 갈수록 자연속에서 뒹군 어린시절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도시 속 회색 빛 인간으로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은 더 굳어져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떠올릴 수 있는 푸르름이 있기에 현재의 나는 깊은 한숨을 내 뱉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