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사람들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내가 있어 존재하는 것 같기에 나를 중심으로 바라 보게 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은 세상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나에게서 만큼은. 말장난 같은 말들만 뱉어 내었지만 내가 속해있지 않던 세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이 책을 통해 그 세계로부터 나를 더 낮춘 느낌이다.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일들 가운데는 나의 자만을 깨뜨릴만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였다. 그 발견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고 초라함 뒤에는 자연의 위대한 힘, 그리고 인간과의 조화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바다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어둠에 빛나는 검은 물결의 유혹이 매혹적이어서 그 속으로 뛰어 들고 싶다는 충동을 눌러 봤을 뿐, 바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육지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심심한 핑계보다는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바다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기에 여행할때나 거쳐가는 경로 정도로 인식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소년시절 모비 딕을 읽고 포경선을 직접 타보는 경험을 했다. 문학을 읽고 비슷하게나마 경험으로 끌어 낸다는 것은 커가면 커갈수록 의미부여가 작아지더라도 독특한 기억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조국 칠레를 떠나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는 그는 어느날 칠레에서 걸려 온 전화 한통으로 고국인 칠레로 향하게 된다. 남극의 바다에서 불법 고래잡이가 행해지고 있다는 신고였던 것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그린피스와는 악연으로 남아있는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 호였다. 분명 니신마루 호는 폐선 처리 된 배인데 어째서 남극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그 모든 의문을 안은 채 그는 칠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를 맞아준 것은 그린피스로 전화했던 닐센이라는 선장이었다. 그리고 닐센 선장의 배 피니스테레 호를 타고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로 가기 위해 여러 곶과 항만을 지나는 여행을 해야 했다. 사건의 현장이란 니신마루 호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부서지고 불타버린 현장이었다. 불법 고래 포획이 벌어졌던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곳에 출현한 니신마루 호는 티모르 당국에 위장 폐선 증명서를 받고 유령선이 되어 고래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좌초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닐센 선장은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기에 직접 그곳까지 그를 데려온 것이다. 사건의 현장에는 고래와 인간의 시신이 뒤섞여 새들의 먹이가 되어가고 있어 끔찍했지만, 닐센 선장이 들려 주는 그 날의 이야기는 더욱 더 놀라운 것이었다.

 

  니신마루 호의 등장으로 불안해 있던 닐센 선장은 피니스테레 호의 선원 페트로 치코의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된다. 범고래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페트로 치코의 말을 통해 그곳으로 니신마루 호가 향할 것을 확신하고 니신마루 호를 주시하며 뒤쫓지만, 악천후로 배를 놓쳐 많은 고래들이 죽음에 이르러 끌어 올려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보다 못한 닐센이 니신마루 호를 향해 돌진 하려하자 페트로 치코가 만류하며 작은 보트를 띄워 니신마루 호로 향한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페트로 치코가 타고 있는 보트로 온갖 오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니신마루 호에서 야유를 보내며 쏟아 부은 것들인데 물세례까지 받아 보트가 가라 앉기 직전, 거대한 고래의 등에 의해 보트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수 백마리의 고래들이 니신마루 호로 돌진하고 있었다. 고래들은 니신마루 호에 부딪혀 죽어가면서도 그 배가 해안에 닿았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의 현장에 그를 데려온 닐센 선장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며 이 이야기를 쓰는 건 그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뒷면에는 '진주 조개와도 같은 책...... 귀에 대면 영원히 생생한 바다 소리가 들려 온다'라는 추천사가 들어 있다. 추천사는 늘 과장 되기 마련 이라는 생각이 짙은데 이 글귀는 잘 드러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 소설이기도 하고 전설이 뒤섞인 바다 이야기 이기도 한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린 시절을 좇아, 고래를 좇아 고국을 간 주인공은 닐센 선장이 들려 주는 놀라운 이야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도 처음에 쏟아냈던 어지러운 나의 말들처럼 많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처음엔 주인공을 좇아 칠레까지 가면서 니신마루 호의 불법 행위가 만천하에 알려져 망신을 톡톡히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주는 처벌보다 자연이 주는 벌을 받은 모습을 보니 꼭 알려져야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겠지만 환경소설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인간과의 조화를 깨트리는 행위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줄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지금처럼 인간이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하게 나간다면 되돌아 오는 만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고는 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방심하는 사이 재앙으로 치닫기 전에 깨달음과 행동을 동시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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