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꽃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온라인 서점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4개의 출판사의 책을 2만원이상 주문하면 미니북세트를 준다는 것이었다. 읽을 책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미니북세트에 홀려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4개의 출판사 가운데 현대문학의 책이 마음에 들어 고르고 있었는데 김춘수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주문했던 이유는 시집을 좋아한다는 사실 이전에 김춘수의 시집이 한권도 없음이 부끄러웠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어야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시인들의 시집이 책장을 채워가는 것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시인이든 낯익은 시인이든 개의치 않고 시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당대의 시인들을 알지 못하고 그 시대의 슬픔을 모른다는 것이 조금씩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인들이 수두룩하겠지만 이벤트에 현혹되어 그제서야 시를 읽겠다고 나서는 내가 한심해 보이는 건 왜일까.
 

  나는 시를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 것보다 쭉쭉 읽는 편이다. 한 음절, 한 귀절 정성들여 썼을 시인들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천히 읽는 것은 더 많은 공백을 두는 것 같아 빨리 읽는 편이다. 그러다 걸리는 글귀가 있으면 그제서야 속도를 늦춰 음미해보기 시작한다. 시는 여전히 나에게 만만한 장르가 아니기에 한 두편만 그런 시를 만나고 책을 덮더라도 뿌듯한 마음이 그득이다. 그런면에서 김춘수의 '달개비 꽃'은 제동이 많이 걸리지 않은 시집이다. 나의 공감을 끌어 내기 힘든 어려움이 내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세계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 안에서의 모험은 난해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 또한 오랜 시간 내면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들을 끄집어 내었을 때 그 주변을 겉돌아야 했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시집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다. 그 이전에 쓴 시도 있긴 하지만 삶의 끝을 향해 가면서 썼을 시인을 생각하면 이런 느낌들은 사라지고 그저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다.

 

  달개비 꽃을 읽다 보면 백지가 한장 나온다. 그리고 백지의 끝에는 알라메르가 말했던 백지의 공포가 아니라 저자가 느끼는 것은 언어로부터의 해방,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해방이 즐겁지 않은 것 같다. 백지가 주는 것은 불안이라고 했으니 시를 쓰지 않은 것이 불안할 정도로 저자에게 시는 특별하리라. 그런 특별함이 왜 내게는 온전히 전해오지 않았던 걸까. 내가 혹여 놓쳐 버린 것은 없는지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느꼈던 감정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안정된 느낌. 시가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에서 마주치던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의식하면서 읽으니 교묘히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 그의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조끔씩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시인의 시에 온전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그의 궤도를 맞춰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 속에서 그의 시를 읽고 났을 때는 그가 세상에 없다는 것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시와 시 사이에 시인과 독자만이 존재할 뿐, 그 공백은 서로가 채워가면 되었다. 시는 그대로이니 거기에 나를 맞추면 되었다. 그럴때에 시인과 다른 의도로 통함을 느꼈더라고 시의 진가를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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