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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떤 작가의 작품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약이 없긴 하지만 설레는 건 분명하다. 그 설레임은 내 손에 그 작가의 작품이 쥐어질 때 최고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설레임이 내게로 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모스 오즈를 무척 좋아하지만 번역이 더뎌 그의 작품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또 다시 저자의 문체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최근에 나온 그의 작품은 아니지만, 희미하게나마 번역이 끊이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모스 오즈와 만남은 이번이 네번째다. <나의 미카엘>,<여자를 안다는 것>,<블랙박스>를 통해 그의 팬이 된 이후 맹목적으로 그의 작품을 기다려 왔던게 사실이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 이전에 <바람을 스치며 물결을 스치며>도 출간되어 내 책 꽃이에 꽃혀 있지만, 읽을 시기를 놓쳐 버리고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은 한권의 책도 읽고 싶어 안절부절이다. 넘쳐나는 책 속에서 아껴서 읽고 싶은 책. 그게 아모스 오즈의 책이기 때문에 한권의 책을 남겨 놓고도 호들갑을 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도 소중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밝은 분위기가 아니였음에도 뚜렷한 드러남없이 두리뭉실한 면이 많았음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모스 오즈의 세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열두 살의 프로피는 유년시절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두 살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불리우며 소년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는 몰라도(요즘은 너무나 빠른 변화가 있어서 고리타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프로피는 한참 성장기를 겪고 있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피의 위치에서 오로지 프로피만이 주인공이라면 나의 성장기와 비교하며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프로피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커져가는 혼란스러운 이때에 국가의 안위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나름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국이 위임 통치하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으니 아무리 평범한 아이라고 해도 주변의 혼란스러움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끼리의 장난스러운 모임이라고 해도 영국 정권을 몰아내는, 소위 비밀 조직의 결성부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던롭 경사와의 만남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배신자라 낙인 찍히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프로피는 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일까. 다름아닌 던롭 경사가 영국인이였기 때문이다. 던롭 경사와의 접촉 자체가 조직의 규율에 위반된 것이고 비밀이 새어 나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피는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조직과 기밀이 노출되지 않았음은 물론 되려 정보를 캐왔다고 해도 벤 허는 '적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배신이야'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들에게 영국은 몰아 내야할 적이였기에 던롭 경사도 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로피가 생각하고 있던 적의 모습은 던롭 경사에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프로피가 생각하는 적, 배신, 평화의 의미에 혼란을 줄 뿐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삶의 위치를 즐겨야 했으니 정치적인 국면을 떠나 12살이라는 나이에 맞는 내면적 고민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성에 관한 호기심, 프로피의 눈으로 바라본 부모님을 통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통찰, 친구들과의 우정도 생각해야 하고 방학을 맞아 일상의 자유도 누려야 했으니, 나름 번뇌가 짙은 12살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프로피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보면 이야기의 끝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프로피가 속해 있는 시대적 배경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해도 프로피에겐 그것이 끝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자의 자전적인 모습이 들어가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프로피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이 중요하더라도 어린 프로피에게는 기억의 한토막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유년시절의 특별한 기억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록처럼 어떤 시기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은 프로피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피의 삶이 책의 끝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엉그러 모은 기억의 단편을 펼친 것처럼 한 소년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배신자라 낙인이 찍인 후에도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처럼 프로피가 바라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12살의 프로피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아모스 오즈의 세계는 내 몸 구석구석에 배인 느낌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색이 깃든 문체 속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었다. 때로는 그런 면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운데 이끌려가는 세계는 현재의 공간을 잊게 할만큼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하는 아모스 오즈. 그의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이끌림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