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 저자의 가족사를 조금 전해 들었다. 세번의 이혼 후, 각각 성이 다른 세 자녀와 살고 있다고. 저자의 작품을 떠나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나름 충격이 컸다. 남들과 같은 곱지 않은 시선일지라도 세번의 이혼은 내가 어느 정도 꾸려놨던 저자의 이미지에 흔들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저자의 글을 편애하며 좋아했던건 아니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의 문체 변화를 염두해 두고 있던 터라 저자의 사생활이 어느 정도 영향이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처음엔 이 책을 읽을 엄두가 안났다. 내가 상상하는 저자의 가족은 우울할거라고 팍팍할거라고 제 멋대로 생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히려 오기가 생겨 내 멋대로인 감정을 뒤집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자의 가족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될 것 아니냐는 자기 합리화적인 오기가.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공지영 작가의 가족 이야기라고 생각해 버린 나의 실수가 치명적이었다. 내 멋대로의 생각에서 헤어 나오기는커녕, 더 깊은 암울함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설적이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요소는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19살의 딸 위녕의 눈에 비친 엄마, 공지영 작가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명 유명작가의 엄마는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아빠의 집에서 살다 엄마의 집에 왔지만, 성이 다른 두 동생과 작가인 엄마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위녕이 눈으로 비춰지는 엄마의 가족과 아빠의 가족은 너무나도 달랐다. 아빠보다는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더 편안히 해주는 것 같지만 표현이 다를 뿐 엄마,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마음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기도 한다.

 

  그런 위녕을 편안히 해주는 엄마는 너무나 발랄하다. 어쩔땐 딸과 엄마의 위치가 바뀌어 위녕이 엄마 같을 때도 많았지만, 그것 보다는 가능성을 너무나 많이 부어주는 엄마의 말들이 소설적이다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위녕 자신도 늘 긍정적인 용기를 북돋워주는 엄마의 말과 행동이 좋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주어 진다는 부담이 어쩔때는 버겁다고 했다. 그래서 위녕의 친구가 가출 했을 때, 악을 쓰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친구의 엄마가 부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 또한 차라리 그런 엄마의 모습이 더 편하게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위녕의 엄마에게 평범한 모습이 없다고 느꼈던 것은 아니다. 유명하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그녀에게 지적이고 근엄한 모습을 기대했을 뿐이지 그녀도 소설가 이전에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혼도 어쩌면 유명했기에 더 신중했으리라는 의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행복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위녕에게 했던 말도 늘 그랬듯이 이혼으로 인한 세간의 이목 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번의 이혼을 무조건 따가운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해야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에겐 이혼이 행복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랑했던 기억이 있기에 세 아이들과 나름 즐겁게 지낼 수 있는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껏 위녕의 눈을 통해서 가족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위녕의 엄마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은 것 같다. 세 번이 이혼이라는 사실은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소설 속의 작가, 현재의 작가를 저울질 하게 만들었기에 그녀의 가족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소설을 읽은 후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저와 위녕, 둥빈, 제제 모두가 남들이 달아준 꼬리표를 달아야 하듯 내가 그들에게 붙여준 꼬리표 때문에 괴로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즐거운 집으로 인식하면 아무 문제가 없듯 나 또한 즐거운 집으로 인식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집이 온전히 즐거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조각난 퍼즐이 맞춰져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가족 뿐만이 아닌 많은 가족들이 각각의 모양의 퍼즐을 가지며 살아가다 그 조각들이 맞춰졌을 때 가족이라 불리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이 다른 아이들이라고 해서 조각이 맞춰지더라도 하나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싶은 기분은 무엇일까.

 

  그건 솔직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감추고 싶어 하는 모습을 드러낸 솔직함. 그 안에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발랄함. 거기다 나의 오기를 뒤집어 주지 않은 발칙함까지. 우울하지 않았지만 좀 더 나은 모습을 기대했기에 맘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것은 주어진 삶에 충실할때 만들어 진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퍼즐의 모양이 다른 구성원일지라도 가족이라는 의의는 변치 않을 것이다. 조각난 퍼즐을 가지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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