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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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나의 독서 흐름을 살펴보면 형편없었다. 일과 관련된 독서는 하고 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독서는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짙었다. 아무리 그 전의 독서 열정을 끌어올리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나의 환경이 바뀌었고, 조금씩 나이가 들어갔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자 싶다가도 이러다 예전처럼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버렸고, 우연히 하루키의 신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틈틈이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과 신간 소식을 접하고 있지만, 나의 시선을 끌만 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3년 만의 하루키 신간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신간이 나오려면 아직 한 달 여의 시간이 남았으니 그동안 읽지 않은 하루키 책을 읽자는 욕구가 올라왔다.


나에게 하루키 작가는 좀 이상하다. 20대 초반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이질적인 정서적 낯섦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하루키 작품을 읽지 않다가 <1Q84>를 읽게 되었고 바로 옴 진리교 지하절 사린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하루키란 작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과 또 다른 르포 작가 하루키를 마주하고 나서 비로소 하루키란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루키 작품을 읽었다. 하루키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변에서 하루키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루키 책을 60권 정도를 읽게 되자 ‘그냥 이 정도면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자’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하루키 신간이 나오면 바로 읽었다. 하지만 3년 전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200쪽 정도 읽고 말았는데, 신간 소식에 마음이 동요되자마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다시 중간부터 시작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책이 꽤 두꺼웠기 때문에 브런치 라이브 독서를 켜고 읽었다. 완독까지 약 6시간 정도가 걸렸다. 정말 오랜만에 눈뜨면 하루키 책을 읽고, 잠들기 전에도 읽고, 외출을 줄여가면서까지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이든 소설가가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소설가의 임무를 다한 게 아닐까? 하루키는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설득 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설 속의 도시와 그림자의 행방, 이후에 이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랬기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하고 초조했다. 오로지 두 주인공이 도시 밖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을지 초점이 맞춰져 나름대로 상상과 기대를 하며 읽어나갔는데,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조금 멍했다. 내가 읽은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고, 결말을 다시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내가 그 도시에서 너를 만난다 해도, 그곳에 있는 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16쪽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오는 건 더 어려운 도시지만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17살 소년 ‘나’는 16살의 소녀를 만난다. 나이가 들어서도 만나기 힘든 영혼이 통하는 인연을 ‘나’는 어린 나이에 만났다. 그리고 그 소녀를 상실했을 때, 소녀를 찾아 둘이 이야기 나눴던 그 도시로 들어간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도시가 실재했고, 시력을 잃는 행위를 거친 후 꿈 읽는 이가 되어 소녀를 만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야기했듯 소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너’를 만나러 이 세계로 왔다는 말도 할 수 없다. 그 도시는 ‘간소하고 정밀한 그리고 완결한 장소’이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의 모습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그림자를 분리시켜야 한다. 그림자와 분리된 후 각각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지만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현실 세계의 ‘나’는 그림자고 이 도시에 존재하는 ‘나’가 본체인 세상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그렇게 소녀를 찾아 도시에 들어가 그녀의 ‘본체’를 만나지만 ‘나’는 죽어가는 그림자를 살리기로 한다. 웅덩이로 뛰어들어 그림자와 탈출을 하려는 순간 ‘나’는 도시에 남는 선택을 한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만나길 염원한 소녀 곁을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림자가 그 도시를 탈출하는 순간 ‘나’도 이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40대가 된 ‘나’는 현실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림자를 한 번 잃었고,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경험하고, 진심으로 좋아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현실의 세계가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런데 다시 그 도시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후쿠시마현 깊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도서관 관장으로 취직을 해서 나름 대로의 시도를 한다. 그 도시에서 ‘꿈 읽는 이’로 살아갈 때 도서관에서 일했으므로, 무언가 연관성을 있을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임 관장 고야스 씨를 만나 인수인계도 받고, 타인과 처음으로 소녀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야스 씨가 겨울에 쓰도록 안내해준 방에서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본 똑같은 난로를 마주한다. 고야스 씨는 치마를 입고 항상 같은 베레모 모자를 쓰는 의상은 독특하지만 ‘나’에게 의지가 많이 되는 사람이었다. 고야스 씨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 함께 오래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고야스 씨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독특한 의상을 갖게 된 연유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고야스 씨와 ‘나’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밝혀졌을 때도 어쩌면 그 도시는 진짜 존재하는 도시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가 분명 그 도시를 경험했지만, 그 도시를 아는 이는 없었고 돌아가는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나’가 도서관 관장으로 오게 된 이후부터는 어쩌면 그 도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만족하며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는 진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려 잠시 머무는 사람처럼 현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만난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자폐적인 성향을 보이고, 무엇보다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도시의 지도를 그려낸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이 방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나’는 단순 실종이 아니라 어떤 경계를 넘어 버렸다고 인지한다. 그리고 그 소년이 매개물이 되어 다시 그 도시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혼란스러웠다. 나는 당연히 ‘나’와 그림자를 이분법으로 놓고, 도시에서 탈출한 그림자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나’는 현실에서든 그 도시에서든 본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로지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정확히는 ‘나’를 기억하는)에 모든 초점이 쏠려 있었고, 회오리가 몰아치듯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름 정리해 둔 소설의 흐름과 규칙(이 소설에서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이 한순간에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그 도시에 있었고, 현실 세계에서 꿈 읽는 이로 오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년에겐 가족, 현실 세계의 미련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세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했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숲에 두고 온 인형이 그림자라면 도시의 소년은 본체여야 했다. 그렇다면 도시로 다시 돌아온 ‘나’도 본체여야 했다. 여전히 그림자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그래야만 현실과 도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집는 소녀의 말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696쪽


현실에 존재했던 ‘나’는 본체가 아니라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의 ‘나’와 도서관의 ‘나’가 교차 되면서 섞이기 시작한다. 옐로 서브마린 소년과의 대화에서 원래 모습으로 ‘환원된’ 것이며, ‘나’의 ‘그림자는 바깥 세계에서 무사히, 멀쩡하게 살아’서 ‘훌륭하게 대역을 해내’고 있다는 말들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냐 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란 ‘나’의 질문에 소년은 ‘그림자와 본체는 아마 서로 교체되기도’ 하고, 본체와 그림자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각자 서로의 소중한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이 소설에서 ‘나’가 소녀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전은 도시에 존재하는 ‘나’와 현실에 있는 ‘나’를 그림자나 본체로 규정하지 않고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도시에서 나갈 수 있다고 했으니 더 이상 소녀와의 재회의 여부에도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가 마음먹기에 따라 도시와 현실을 오갈 것이며, 어떤 존재든 이제는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는 독자를 설득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완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설득당하고 있던 세계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허구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실은 지독한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다. 이 또한 어떤 것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었고, 그것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나’만큼의 비밀스럽고 절절하진 않더라도, 내 안에 새로운 세계가 자리한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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