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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들 ㅣ 모호
앤 카슨 지음, 황유원 옮김 / 난다 / 2025년 10월
평점 :
매년 10월 초가 되면 노벨문학상 발표를 기다린다. 내가 아는 작가인지, 혹은 내 책장에 있는 작품인지 궁금해서다. 올해는 앤 카슨이란 작가가 수상했는데, 전혀 모르는 작가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저자의 작품을 구입했다. 총 5권의 책을 쌓아두고 조금씩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난해했고, 문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소개며 설명을 조금씩 읽으면서 저자의 작품은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이 집중을 할 수 없어 가장 얇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굉장히 짧은 글들의 연속이었지만 읽는 동안 이 글의 장르를 떠올릴 수 없었다. 모든 제목에 ‘짧은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글을 만나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접근 방식이 생경했고, 전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익숙해져서 이해하려 하면 글이 끝나 버렸다.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나서야 ‘편의상 시집으로 분류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 어떤 장르의 울타리에서도 벗어나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앞 뒤가 알 수 없는 꿈의 잘라다 놓은 기분도 들었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정말 장르의 울타리 없이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쓰인 작품이었다.
그러다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한 이 글을 이해하며 읽는 게 아닌 감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을 이해하고, 앞 뒤 문맥을 찾는 것이 아닌 느껴지는 대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치 미술관에 가서 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 그림을 마주하고 느끼는 것처럼 저자의 시들을 내게 다가오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나서 옮긴이의 글에서 카슨의 어릴적 이야기와 함께 이 시집은 ‘원래 그냥 짧은 제목만 달린 그림들’이었단 말을 듣고 나서 그제야 내가 그림이 없는 액자 속에 시를 읽은 것이며, 이 시를 한 편의 그림처럼 봐도 무방함을 깨달았다. 그저 짧은 그림과 긴 그림으로 구분할 뿐, 그림이 내게 툭 다가오듯 그림을 그저 글로 만난 것 뿐이라고 말이다.
그는, 간통을 범하는 사람처럼 서둘러 차가운 초록빛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붙잡았다. 강은 돌로 된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강은 자기 입술 쪽으로 쇠라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색채광선주의에 대한 짧은 이야기> 19쪽
조르주 쇠라가 자신의 점묘법을 활용한 회화 사조를 줄여서 ‘색광주의’라고 한다고 하는데, 쇠라의 그림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강이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자기 입술 쪽으로 밀어 붙인다’라는 표현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쇠라처럼 저자도 한 편의 그림을 시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모든 시가 이렇게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의 그 느낌처럼 감각적으로 보고 느끼고 지나가는 것도 괜찮았다. 모든 작품을 이해하고 넘어가고, 느낌을 표현하고 꾹꾹 담아내지 않듯이 또렷하지 않은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윤곽을 만들어 냈다. 그게 명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더라도, 그저 육감으로 만났다.
그의 작품군은 기대, 욕망, 통찰력, 공포, 수치심과 저항을 독창적이고, 간결하지만 함축적이고, 제멋대로인 방식으로 극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13쪽
마거릿 크리스타코스의 발문에서처럼 이 혼란을 어찌어찌 통과했다. 또렷함이 아니라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듯, 혹은 하나로 합쳐졌다 떨어지듯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이 순간에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이것을 앤 카슨의 사조로 볼 수 있다면 나도 적당히 발을 들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의 세계로 좀 더 들어가 보려고 한다. 나 역시 저자의 작품 안에서 경계선을 정해두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