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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오늘처럼 몹시 추운 날이면 러시아의 추위를 상상해 본다. 더불어 따뜻한 방에서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어 본다. 추운 겨울에는 왠지 장편이 읽기 좋고, 어느 정도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러시아 문학이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 때문이다. 러시아가 추운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 추위가 모든 러시아 문학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로 읽었던 러시아 문학에서의 겨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고골의 '외투'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찬바람이 몸 속으로 스며들 때면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고충이 생각난다. 그는 얼마나 추웠을까. 그리고 새 외투가 생겼을 때 얼마나 따뜻하고 뿌듯했을까. 외투를 뺏긴 그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한참 러시아 문학에 빠져 있을 때, 고골의 작품을 대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문학이라면 환장하던 내가 고골이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독특함, 당황스러움, 만족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짙다는 이유로 고골의 작품을 제대로 탐독을 못했다는 느낌이 늘 내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소개할 기회가 생겨서 다시 한번 읽었는데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익숙함 속의 새로움, 낯섬 가운데 밀려오는 흥미로움. 그런 흐름 속에서 만난 고골의 작품들은 여전히 색다른 매력을 주고 있었다.
총 다섯 편의 단편 중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었던 작품은 '광인일기'와 '네프스끼 거리'였다. '코','외투','자화상'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부분이 많은데, 광인일기와 네프스끼 거리는 왠지 모호함 속에 묻혀 버린 듯 흐릿했다. 그래서 두 작품을 더 염두해서 읽었는데 두번째 읽음에도 첫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처음 읽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 놓쳐 버렸던 것들을 되돌아 봄으로써 내 기억속에 비어버린 부분을 채워갈 수 있을거라 생각 했다. 그러나 그 두작품은 다시 읽고 보니 채워지지 않은 의문들이 여전하더라도 늘 찌꺼기 처럼 남아 있던 아쉬움은 어느 정도 해소된 기분이었다. 나의 집중이 흐트러져서 생긴 비움이 아니라는 안심 때문이었을까.
관심을 요했던 두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 버려서인지 나머지 세 작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코를 잃어 버리고 한바탕 웃지 못할 헤프닝을 벌였던 <코>. 외투를 잃고 충격으로 목숨을 잃은 관리의 사연을 다룬 <외투>. 어느 고리대금업자의 자화상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자화상>. 모두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음에도 고골 특유의 스타일에 젖어 든 시간들은 독특했다.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을 읽으면서 익숙해져 있는 러시아인의 기질과 그들의 문화의 바탕이 있었기에 고골의 작품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문학의 첫 작품이 고골의 작품이라면 다른 작품들이 서정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고골의 작품을 다른 러시아 작품들에 비해 늦게 접해서 고골의 작품은 독특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은 러시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19세기의 러시아 문학에 고골의 작품들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뿌쉬낀, 도스또예프스끼를 주로 읽다 접한 그의 작품은 색깔이 달랐다. 자신의 운명처럼 광기적인 면에 해학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느껴졌음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골의 작품은 러시아의 익숙함에만 젖어 러시아 문학을 찾아 헤메던 내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 주었다. 고골의 작품을 접하기 전에 만났던 러시아 문학들은 깊은 내면을 다룬 작품들이었다면, 고골의 작품은 감추고 싶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유머러스하게 다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유머스러운 면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그가 그려내는 상황들에서 통쾌하게 웃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웃음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고골의 작품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이라고 단정 짓기가 모호하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고골의 작품들이 왠지 겨울의 깊은 밤과 어울리는 것 같아 추운 날씨 속에 잠시 그의 세계로 잠입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