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범우문고 62
F.사강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가끔씩 책 제목으로 예상하는 책 내용이 판이하게 빗나가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책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간과한다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상했던 장르나마 무참히 빗나가는 책들. 그 책들을 볼때마다 역시 책은 읽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여서 궁금증은 풀었기에 조금은 후련하지만, 사전 지식 없이 제목만 들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왠지 철학이나 산문일거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순전히 브람스라는 이름 때문이었는데, 아직도 내게는 브람스 같은 음악가를 논하는 클래식에 역간의 허영이 남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묻는 것도 아니고 강요도 아닌 애매한 제목 앞에 무언가의 무게감이 전해져 올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건 연애소설이다. 그 사실이 처음엔 약간의 허무함(?)으로 다가왔지만 읽고나서 뻔한 스토리의 쓴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뻔한 스토리를 어느 정도 예상 했기에 쓴맛이 묻어 나지 않는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여주인공 폴르의 내면에 들어갈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폴르는 연인 로제가 곁에 있어도 늘 고독한 여인이다. 만족스러운 자신의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매일 만나지만 그녀의 내면의 공허는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연인이 있어도 기다림으로 주말을 혼자 보내야 하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엔 무엇이 그토록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그런 그녀의 앞에 시몽이 나타난다. 자신보다 14살이나 어린 그 청년은 그녀에게 불꽃같은 마음을 던지고 그녀는 시몽에게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몽의 사랑 앞에 그녀 전부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로제의 외도로 인해 시몽이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두 남자 모두에게서 끌어 넘치는 열정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 내면의 비어있음 일지도 모르고 연륜에서 나오는 익숙함일지도 모른다. 시몽의 곁에 있어도 로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고 로제의 곁에 있어도 그녀가 느끼는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폴르 자신이 채워야 하는 내면의 행복이지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히 행복의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고독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차분하다. 시몽과 로제 사이에서의 혼란을 느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누구 곁에 있건 두 사람을 공유하고 있다. 그 공유는 두 사람을 다 놓칠 수 없다는 욕심이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 다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고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계속 방황할 수 만은 없었다. 마치 세상을 달관한듯한 그녀의 정신세계는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지만 커다란 변화를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과의 이별을 모두 겪은 후 결국 로제의 곁에 더 시들어 버린 상태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것을 돌아감이라고 해야 할지 머무름이라 해야 할지 판단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진부함이다. 오히려 시몽의 곁에서라도 삶의 희열을 느꼈다면 시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몽과의 극복될 수 없는 한계(나이 차이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터울의 공백이 더 컸을 것이다.)를 깨닫고 익숙함 밖에 느낄 수 없는 로제 곁에 머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를 바꾸는 것은 다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떤 식으로든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소설은 절대 격정적인 내용이 아니다. 불꽃 같은 태워짐도 마음에 드리워지는 상처도 그리 깊지 않다. 회한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명력만 존재할 뿐이다. 그 가운데 폴르에게 찾아드는 로제와 시몽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폴르의 삶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그것들만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폴르의 삶에 사랑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온전히 사랑에 목메이지도 못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올인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랑도 어쩌면 폴르의 내면에 비춰지는 것들을 감추고 있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사랑으로 인해 내 삶에 빛이 비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폴르의 내면이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 그 사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또 다른 나를 꺼내서 덧입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다 폴르처럼 외롭기에. 그리고 고독하기에.

 

  저자는 이 소설은 24살 때 썼다고 한다. 현재의 나보다 3살 어린 나이에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조금은 징그럽게 느껴진다. 소설속의 폴르의 내면을 자유자재로 끌어내는 그녀의 나이가 걸려서겠지만 놀라움도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성숙하다 못해 완숙미가 느껴지는 심리묘사는 저자의 내면과 직결된다는 생각에까지 미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그려내는 폴르의 내면 앞에서 우리는 당당해질 수 없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녀의 나이를 걸고 넘어질 수도 없다. 폴르는 나와는 분명 다르지만 비슷함을 안고 있기에 폴르의 내면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에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