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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 의 원작이라고 하니 퍼뜩 드는 생각이 책을 읽고 후딱 읽고 영화를 보면 재미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몇 편의 영화를 책을 읽은 후 비교해 가면서 보니 훨씬 더 흥미로웠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단순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영화를 먼저 보든 책을 먼저 보든, 먼저 접한 것에 충실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로는 원작을 충실히 한다는 것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약간의 각색은 필수 불가결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는 각색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래서 영화는 잠시 잊고 책에 충실하려 한다.
가끔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작품 속의 몰입이 될때도 있을 것이고, 내가 원했던 것을 만났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희열을 느꼈던 것은 야나가와 도시 여사였다. 처음엔 어리바리한 유괴단을 진두지휘 한다는 것에 끌려서 그 과정을 무척 궁금해 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촘촘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사가 벌여놓은 일들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귀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사는 분명 유괴 되었다. 나름대로 준비한 유괴범(후에 여사가 '무지개 동자'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들에게 유괴가 되긴 했으나 여사는 너무 차분하고 순종적이었다. 그리고 유괴범들을 헛점을 차근차근 짚어주면 은신처까지 제공하게 된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여사는 서서히 무지개 동자들에게 일을 부추기며 자신의 구출보다 경찰들과의 접선에 더 적극적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몸값을 100억엔으로 올리고 대충매체를 통해 일본전역 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이슈가 되게 만든다. 그러나 이 터무니없는 몸값 제의를 받고서 여사의 가족이나, 경찰이나, 일본전역이 동요하면서도 여사의 구출을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컸다.
여사가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아등바등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베푼 것이 더 많았기에 여사를 극진대우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여사를 구출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이 있으니 경찰본부장 이카리였다. 그는 여사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여사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첩첩산중 여사의 집으로 단박에 내려온다. 그 뿐만이 아닌 그 지역의 사람들이나 여사의 도움을 받은 수 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전해져 무지개 동자가 단서만 흘린다고 하면 바로 신고당할 정도의 열의가 일본열도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여사의 유괴 사건 가운데는 이카리와 여사의 보이지 않는 두뇌싸움이 시작 되고 있었다. 이카리도 경찰로써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이카리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여사였다. 유괴사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과 충격 그 자체인 요구들을 제시함으로써 이카리 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게 했다. 그런 과정 속에는 유괴범들에게 자신의 몸값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여사의 자녀들이나 경찰측, 여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꼼꼼함과 치밀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모두들 여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천성적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여사의 인품에 무지개 동자까지 빨려들고 말았으니 이 유괴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유괴단은 물론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는 그 사건을 해결 할 사람은 여사 뿐이었다. 여사는 차근차근 모든것을 해결해 나갔다. 그 배후에 여사가 신용을 쌓았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일을 벌이고 마무리 한 사람은 여사였다. 도무지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은 100억엔의 몸값의 출처와 수령을 모두 해결한 후 무지개 동자의 개과천선까지 보았으니 그야말로 여사의 연극은 완벽했다. 물론 모든 잡음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후일 이 사건을 통해 여사는 자신을 다시 한번 살렸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여사의 입을 통해 나온 이유를 듣는다면 허무할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은 무지개 동자를 도와 자신의 유괴를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보다 궁금했을 테니까. 그러나 여사의 답은 간단했다. 그 모든 배후에 여사가 있었다는 걸 눈치 챈 이카리가 물었을 때, 여사는 짐짓 말을 돌렸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줄어버린 몸무게로 인해 삶의 마지막에에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지개 동자가 나타난 것이다.
늙은이의 객기라고 해도 상관없고 노년의 쓸쓸함 때문이었다 생각해도 무관하지만 그런 여사의 마음에 수긍이 가는 건 왜일까. 여사의 연극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힘들어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계산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여사의 몸값은 큰 손해가 가는 부분이 아니었다. 또한 무지개 동자가 개과천선 하는 바람에 남아버린 많은 돈은 결국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으니 인과관계를 따져 보자면 얼추 성립이 되는 게임이었다. 그 과정이 온전히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때가 얼마나 있을까. 그 댓가의 판단은 유보 하더라도 82년 여사 인생에서 가장 짜릿했을 순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여사를 비판하고 이해하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나는 여사를 이해하고 싶다. 어느 정도의 중립을 일궈 냈으니 그 정도면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남은 생은 그때보다 더 즐겁게 살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다.
후기를 읽다 이 책의 발행연도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읽어도 시대의 뒤떨어짐이나 허술한 구성이 느껴지지 않는 책인데 1978년에 출판된 책이라니.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기에 이런 스토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식적인 부분이 많다 생각했던 일본인들의 신뢰를 이 기회를 통해 일본의 특징으로 굳힐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편의 소설이지만 여사가 쌓았던 수 많은 사람들과의 신뢰가 없었다면 여사는 그런 연극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런 신뢰를 역이용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의 책이지만 그 과정속에 숨겨진 뜻은 충분히 느껴져 미스터리 소설이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처음 맛보았던 여사에 대한 희열은 하나의 추억으로 굳혀지고 있다. 그 희열을 여사처럼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나 또한 여사에게 은혜를 입은 느낌.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