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테러
테리 이글턴 지음, 서정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목은 '서구 문명사에 스며있는 테러의 계보학에 대한 고찰'이다. 대충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파악은 가능하나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에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명히 테러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지는 테러를 말하고 있을텐데, 그런 테러에 '성스러운'을 붙이다니. 읽기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또다시 마주하게 된 인문서적을 보고 있자니 이젠 수련을 하는 기분조차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넘기 힘겨워하는 산을 넘어보고 싶은 욕망이 이는 것도 제재할 수 많은 없었다. 책을 한 권 읽는 것에 이런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때론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만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한번쯤은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하며 힘겹게 힘겹게 책을 읽어갔다.

 

  이 책을 마주했을 때의 마음을 길게 늘여 놓았던 건, 그만큼 내가 소화 하기에 무리가 가는 책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요 개념은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문을 꼼꼼히 읽어 보았지만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는 '테러라는 개념을 좀더 고유한 맥락, 즉 넓은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이라 부를 수 있는 맥락에 위치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었다. 그 형이상학적인 면모 외에도 신학적 연구의 국면에서 나온 성과라고 하니 조금은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지 못했던 성찰이 깃든 글을 자주 발견 했으니 초반의 호기심은 조금이라도 충족한 듯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광범위한 테러 보다는 더 넓게 퍼지고 있는 것을 느껴 갔기에 늪으로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옮긴이도 이 책의 매력은 이론적 정교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숱한 허구적 인물과 개념적 틀을 빌려 정작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메세지를 다양하게 변주하는데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니 저자의 변주에 중심이 없는 나는 휘둘리기 마련이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도, 동감할 수도 없었으니 안타까운 마음만 그득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학속으로의 통찰이었다. 정말 많은 예를 들고 있는 문학작품과의 관계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이 허다해(읽었더라도 저자가 말하는 인물이 기억이 나지 않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책들을 찾아서 다 비교해 보며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잠깐잠깐씩 스쳐가는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은 후반부에 나왔던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 때문이었다. 저자는 치명적 의지의 본질을 파헤친 작품중의 하나라고 했지만 그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테러, 혹은 더 많은 분석과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테러에 대한 여러 갈래의 성찰을 이해할 순 없더라도 문학작품을 빌어서라면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부분이었다.

 

  문학작품을 예시로 드는 부분에서 저자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테러에 대한 개념이었다. 책의 초반에 디오니소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고견을 밝혀갔지만 내가 생각하는 테러와는 너무 다른 개념이라 정의 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테러' 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9.11 테러 이후로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 테러의 개념을 고대까지 올라가 끌어내는 저자가 마냥 놀라울 뿐이다. 그만큼 여러 각도에서 점철시키는 테러의 다양한 면은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틀에 박힌 테러의 개념을 벗어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발견한다는 것은 신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만큼 나의 공감도 부족했지만, 이론적 정교함을 피력하는 글이었다면 진즉 책을 덮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의 기본지식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좀더 즐겁게 읽었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현재의 나의 수준에 만족하며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과정이 힘겨워도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책의 본질을 꿰뚫지는 못하더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던져보며, 책 속의 문학작품부터 찾아 읽어봐야 겠다. 그 작품을 읽게 된다면 저자의 다양한 시각을 빌어 더욱 더 풍족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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