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마음 - 아름다움에 대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
이남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쳤다. 책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보다는 의자의 불편함, 주변 사람들의 소란 때문에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은 시간 떼우기에 급급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다 읽을때쯤 목적지에 도착해 있겠구나 라는 계산으로 펼친 책이였는데, 그 모든 계산과 소란함을 뒤로한 채 책 속으로 스며들어 버렸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에세이를 만난 즐거움 때문이었다. 일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 현재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행복인 것, 나의 존재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 그것이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힘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일상을 그려낸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해지고 있었으니 그 특별함에 나의 일상을 대입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자의 글도 글이지만 나의 마음에 쏙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펼쳐놓는 글의 소재였다. 나의 동경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스레 드러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매력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갖추고 싶은 것들을 자신의 일상에서 모두 담고 있었으니 내가 빠져드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내가 관심있어 읽은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문학, 음악, 영화 자연의 싱그러움까지 모두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었다. 문학과 예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펼쳐내는 그의 글이 어렵지도 않았지만 그 자유스러움에 나는 그만 홀딱 반해 버렸다. 내가 갖추고 싶었던 마음의 양식, 감성을 아낌없이 펼쳐내는 저자야말로 나의 이상형이자 이상향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누가 채어가도 채어 갔겠지만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워지는 것은 부재의 목마름이었다. 왜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가 하고 겻길로 새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이 책에 담겨있는 저자의 사고 속에 깊은 공감을 했기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려보게 된다.

 

  저자는 문학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데 나름대로의 밝은 눈을 가졌다 자부한다고 했다. 자칫하면 젠체한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소개글과 함께 실린 저자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넉넉함이 퍼졌다. 저자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밝은 눈의 실체(?)를 편견없이 보겠다는 다짐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런 다짐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걱정했던 젠체의 분위기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가치와 헤아림을 추구하는 밝은 눈을더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학 교수라고 해서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에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차분하면서도 정갈한 고견들은 저자의 이끌림에 충분히 빠질 수 있었다. 글로만 만났다면 내면에 퍼지는 감격이 줄어들었을 법도 한대,  한편한편의 에세이에 실려있는 자료들은 저자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글을 읽다 한편의 그림을 보며 사색에 빠지고, 한장의 사진으로 공간이동을 하며 내 상상력은 풍부해져 갈수 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 느끼는 상상력이라 하면 나 또한 경험이 많기에 할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저자가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있기에 잠시 빌려 적음으로써 이 책에서 느낀 공감을 말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지닌 사상력의 수준에 따라서 독서과정에서 재구성 되는 상황과 감정의 구체성, 폭, 깊이 등은 크게 달라진다. 어떤 문학작품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력의 작용을 그만큼 확대했다는 것과 상통한다'(p.125) 이 책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독자의 상상력의 작용을 확실히 확대시켜 주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반면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굳이 상상력을 확대시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글이 어렵지 않다는 것과 시각적인 효과, 또한 자연스레 열리는 감성의 폭이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더 펼쳐 보기를 권고하는 것은 내게 생경하거나 무관심적인 것들과 얕은 지식을 드러냈던 것들에 날개를 달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맞지 않더라도 나의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흡수되는 글의 소재는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순식간에 읽어버린 글들 가운데서도 만나게 되는 편안함이 나를 지배 했는지도 모른다. 미당 서정주의 시를 빌어 일요일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듯이 우리들이 아직 못찾은 마지막 골목들을 찾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편한편 읽어 나가면서 골목 하나하나를 섭렵해 가는 흥분과 설레는 발걸음이 늘어만 갔다. 얼마의 골목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목의 찾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속에 녹아 있는 마음을 찾길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발품을 더 팔더라도 구석구석을 누비는 만족감. 그 만족감으로 나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넘치고 있다. 그 골목을 찾아 나서는 것. 저자를 통해 상상력의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오타일까?

p. 50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대, -> 있을 때

 

- 슈나이더가 쓴 글렌 굴드의 전기 중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했는데, 원본이 이런지 옮기다 이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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