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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굿바이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겉표지를 얼핏 보면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본다면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것을 눈치 챌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람이 느껴진다. 여인의 머리카락에도 여인이 붙잡고 있는 주황색의 천 위에도, 그리고 넓고 넓은 하늘의 공간에도. 또한 여인의 원피스 형태는 여름을 연상시키지만, 꽃무늬는 길가에 피어있는 가을 꽃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므로 겉표지의 분위기는 늦여름보다 초가을 분위기가 난다고 말하고 싶다. 책 속의 이야기들도 가을에 만나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내게 여름의 끝자락은 피하고 싶은 시기다. 햇볕의 뜨거움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늦여름은 모든 것을 식어지게 한다. 특히나 늦여름의 한낮에 터미널에 가본 사람이라면 나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도시의 터미널보다 조금은 후미진 지방의 터미널은 여행객들의 열정도 사그라진 무료함 그 자체가 온전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표지의 계절을 억지로라도 가을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이야기가 늦여름에 느껴야 하는 것이라면 내게 와 닿는 감정의 양상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늦여름의 늘어짐, 무료함, 사그라듬이 느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목을 신경쓰다 모든 단편이 이별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분명 수많은 이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슬로 굿바이'처럼 이별보다는 사랑의 시작, 설레임을 간직한 단편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단편의 순서야 상관 없겠지만 그 모든 아픔과 시작을 거쳐 설레임을 간직하다가 마지막의 단편에서 진짜 이별을 만났을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슬로 굿바이'가 처음이나 중간에 있었다면 어색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다양한 설레임을 잔뜩 머금다 만난 이별은 잠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설레임들과 천천히 이별을 하라는 건지, 설레임을 천천히 받아 들이라는건지 혼자만의 말장난으로 무언가를 끊고 맺으려 했었다. 그러나 사랑에 끊고 맺음이 가능할까. 사랑은 마음을 주는 것이기에 늘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들 투성인데. 그러나 그 모호함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느껴진는 것들은 진실이었다.
때로는 그 느낌이 혼자만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지만 결국은 상대방과 거의 비슷한 마음이기에 설레임이라는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 책의 대부분의 단편들 느낌이 이러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끝에 가서는 서로의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기분좋게 만들었다. 사랑도 이별도 피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사랑의 설레임만을 더 만나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별을 겪은 나의 피해의식 일지도.
그러나 책 속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잠시 자문해 보게 된다. 내가 사랑을 할때, 누군가를 좋아할때 오로지 나와 그 사람만 두고 보았는가를. 이들의 사랑의 내면 속에는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의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비출지, 그 사람과의 미래는 어떠한지, 더 나아가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까지 말이다. 이들에게는 최소한 누구 때문이라는 시선의 부담은 없었다. 철저히 둘만의 감정이 중요시 되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그들의 내면을 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면 때문에 단편들 하나하나가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랑이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 그러한 시각은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책 속의 배경이나 삶의 모습들에서 생경함을 느꼈던 것은 일본적이다라는 것을 보지 못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책 속에 언급되는 묘사 속에는 세계의 다양함이 축약된 모습이었다. 주인공들이 밥을 먹는 세계 각국의 식당이나, 외국 음악과 언어에서 느껴지는 외래어들은 내가 과연 일본 소설을 읽는 것인지 잠시 헷갈리게 만들었다. 세계화 시대에 그 정도를 거슬려 한다고 면박을 준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들의 의식도 색깔을 잃어 버리지는 않을까 주제넘은 걱정까지 해본다. 어쩌면 책의 곳곳에 드러난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문화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해도, 정체성을 잠시 잃게 되기에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전제가 되는 섹스는 점점 기대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하나의 과정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섹스의 드러남은 여전히 껄끄러운가 보다. 오히려 지지부진한 것보다 쿨한면을 담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고리타분한 면이 내안에 잠재되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의 다양함을 보게 된 것 같아 잠시 내 감성이 되살아 나는 느낌이 든다. 사랑의 설렘이든, 안정감이든, 이별이든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한 끊임 없을 것이다. 그 끊임없음이 유독 가을에 더 진하게 다가오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나약해 지는 것은 아닐까. 대리만족이 아닌, 설레임을 가져보는 것. 올 가을에도 내겐 힘든 것일까? 잠시 그들의 설레임을 질투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