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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책을 읽는 상태에 따라서 책에 대한 기억이 달리지는 편이다. 책을 읽기 최악의 조건이였다면 그 책에 대한 이미지는 기억의 저편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가끔 책의 내용보다 책을 읽는 배경이 더 인상 깊을 때도 있지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분위기와 내용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환상의 조화가 아니였나 싶다. 좁은 기차칸이였지만 옆에 앉은 사람의 다리에 무례하게 두 발을 걸치고 숄을 등뒤에 대고 책을 읽었다. 책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더 집중을 했어야 할 상황이였지만 내게는 창 밖의 풍경이 책을 읽기 위한 배경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편안함을 떠올리면 이 책이 떠오르고, 이 책을 떠올리면 그때의 편안함이 밀려오는 상호보완적인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책의 절반을 그렇게 읽고 나머지 절반은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며 읽었다. 시끄러운 곳이였지만 분위기에 취해 순식간에 읽어갔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조건이 충분했으므로 책 또한 강렬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강렬함의 가운데는 편지라는 매개물이 있었다. 독자와의 관계를 더 진하게 연결시켜 주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한가지의 추억으로 남겨 있을 편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기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로써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었다. 소설가를 지망하는 저자는 기치조오지의 레오나르도 카페에서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편지를 대신 써주면서도 가끔 푸념을 섞어가며 소설은 쓰지 않고 무엇을 하는걸까 라고 한탄하지만, 대필을 해주었던 시간들이 그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되리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사연 하나하나가 더해가면 갈수록 저자가 대필을 관둘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일 뿐이였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에는 그 모든 것을 믿고 싶게 만드는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마음을 덜어내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레오나르도 카페에서 편지를 잘 써준다고 소문이 나게 된 건, 단순히 글을 잘 써서만은 아니였을 것이다. 글솜씨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의뢰인들의 마음을 진실하게 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게 아니였나 싶다. 의뢰인들의 사연을 듣더라도 의뢰인의 입장으로 빠져들지 않는다면, 글을 잘 쓴대도 편지의 요점을 잘 잡았다 해도 진실이 없다면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감정에 치우치는 격한 편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써나갈 것인지의 구상도 중요하다. 대필가가 힘든 것은 의뢰인의 마음도, 편지를 받을 사람의 입장도 제 3자로써 잘 헤어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보다는 의뢰자의 입장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동화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을 저자가 잘 풀어 냈기에 레오나르도 카페에서 그는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누렸을 거라 믿는다. 또한 사연을 들었더라도 많은 부분을 상상하며 써야 하기에 소설가 지망생의 본본과도 동떨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소설가 지망생이 저자의 의도였다고 해도 말이다.
의뢰인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변화무쌍한 삶의 편린들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각자의 아픔과 설렘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풋풋한 마음도 있었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한도, 자기 치료적인 편지도 있었다. 물론 저자가 의도한대로 흘러가서 편지의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마음의 드러남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료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든, 그 마음을 지켜보는 상대방이든 두리뭉실 했던 것들을 펼침으로써 변화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마음을 드러내는 글 앞에서 그 사람을 달리 본다든지, 잊고 지냈던 추억을 꺼냄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료했던 것만 봐도 충분했다. 우리의 내부에 묵혀있던 것들의 실체가 커다란 짐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그랬기에 저자가 써주는 편지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마음을 정리 못하는 사람들의 대신이 아닌, 그 편지로 인해서 자신의 삶을 조율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저자도 초반에 밝혔듯이 손으로 쓰는 편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우체국의 소인부터 상대방이 접었을 종이의 면을 쓰다듬음으로 지나간 체취를 느끼는 것을 나 또한 좋아하기에 지금껏 펜팔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편지는 평상시에 꺼내기 힘들었던 얘기들을 나열하기가 좋다. 받는 사람을 염두하고 쓰는 편지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쓰는 고백적인 편지가 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타인에게 드러낸다는 것은 어렵지만 편지는 그나마 쉬울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드러낸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그 마음이 나의 과거였다고 해도 내면의 흐름의 한 면을 떼어서 보냈기에 그 또한 하나의 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의뢰인들의 고백을 대신해 주었다. 표현이 서툴다고 의뢰했지만 스스로의 고백이 힘들어서였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편지가 써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의 첫번째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깨달아 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타인이 아닌 내 자신부터 라는 걸.
오타발견
p. 123 고동학교 -> 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