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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8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중반에서 서서히 종반을 향해가는 홍루몽은 갈수록 번잡해지는 느낌이다. 무언가가 툭하고 터져 버릴 듯한 긴장감을 감춘 채, 폭풍전야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어렸던 자매들이 하나둘씩 시집을 갈 나이가 되었고, 집안은 하루하루 사건이 터지지 않는 날이 없다. 워낙 큰 집안이니 사건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이 아니라 무언가가 불안정하고 실속없이 들썩이는 느낌이 든다. 마치 무너질 준비를 위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있는 기분.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어디에서건 사람과 사람간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8권을 읽으면서 한번 더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그것을 보여줄때 어떤 사건 앞에서도 어느 정도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터인데, 8권에서 그런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시기, 질투, 모함이 없을 수는 없지만, 현명한 관리도 자기 집안일은 지혜있게 처리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집안 곳곳에서 그런 모습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가장 큰 사건은 간계에 넘어간 왕부인이 시녀들을 비롯한 대관원의 자매들의 방을 샅샅이 뒤진 사건일 것이다. 음흉한 주머니가 발견 되어서 그 주인을 찾고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사로운 감정이 안 들어갈 리가 없다. 왐부인이 보옥을 걱정하여 그런 단속을 시작했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여 주는 사람은 왕부인이 아닌 밑의 사람일 터, 객관성을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보옥이 평상시에 시녀들과 자매들과 어울리는건 사실이지만 보옥이 그들을 다른 마음으로 대하거나 시녀들 또한 보옥에게 잘 보이겠다는 분위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모함에 눈을 뜨지 못한 왕부인은 하나하나 들춤을 믿고, 감정대로 시녀들을 내친다. 사기는 대관원에서 안좋은 모습을 보여서 쫓겨 났다고 쳐도 가장 억울한건 청문이였따. 보옥의 시녀로써 보옥과 잘 지내고 또 몸이 안 좋아서 늘 앓고 있었는데 그의 행실을 트집잡아 쫓아 버리고 만다. 결국 마음의 병까지 얻어 세상을 등져 버리지만 집안에 부는 점잖지 못한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8권의 시작부터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들을 복잡하게 엮어 가는 것이나, 한바탕 집안을 뒤집어 놓는 수색이나 대관원의 분위기는 계속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거기다 보채까지 거처를 옮기고 영춘은 시집을 가서 고생을 하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은건 보옥이다. 사건이 터지기 전의 대보름 축제도, 아버지의 칭찬도 보옥에게는 활력이 되지 못한다. 그전처럼 자매들이 다 모여서 시회를 열고 즐겁게 지내는 분위기를 그리워 할 뿐,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어려 집안의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이제 예전 같은 평화는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자신의 혼사가 논의될 때의 보옥의 심정은 어떠할지 미리부터 걱정이 되는건 이른 생각일까.
완만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전에 집안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고, 어떠한 바람이 불지 조마조마한 가운데 읽어내는 홍루몽은 즐겁지가 않다.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수는 없지만 결과를 앎에도 그 과정을 지켜 보는게 유쾌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미리 알려준 결과가 변할리는 없겠지만 몇줄로 써놓은 미래를 자세히 풀어서 읽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 진다. 가독성 높게 읽히는 책이고 그들이 사는 시대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그들의 불행을 지켜 보는건 쉽지 않다. 우울하고 결말이 안 좋게 흘러 가는 걸 별로 안좋아 한다는 푸념으로 생각되어 질수 있으나 그걸 뒤집을 수 없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소설이긴 하지만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혹여나 그들의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꾼다 해도 그것을 지켜 보며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는 현실감이 결여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 내기도 부족할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독창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사고와 감정들이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고 그것 또한 내 삶의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에 나의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더라도 따르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내 인생에서는 수 많은 가능성을 헤쳐 보는 시도를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