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개혁가 배틀 LIVE 역사청문회
이광희 지음 / 주니어태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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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족하다고 느낀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한 번 공부해서 모든 걸 알고, 딱 정리되는 게 아니다. 역사는 기본 틀에서 계속 지식이 덧대어지고 쌓여서 나만의 것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길다. 그래서 지식을 재미있게 쌓아주는 책을 만나면 눈이 번쩍 트인다. 이 책이 그랬다. 『조선 최고의 개혁가 배틀』이라는 제목 답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정립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책을 읽는 동안 ‘최고의 개혁가’가 누구인가를 찾기보다 그 시대의 인물들에 깊숙이 들어갔다. 다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개혁을 외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근본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나 기득권층의 이익에 힘을 보태기보다 약자의 편에 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약자의 편에 서는 방법과 문제를 해결해내는 과정에 모두 동조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을 ‘개혁가’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들을 ‘개혁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이들이 이룬 개혁의 내용은 짚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여립은 ‘천하공물 하사비군’ 즉 천하는 공공의 것이기 때문에 정해진 주인이 없고,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선 현명한 임금이 필요한데 이씨 왕조가 왕위를 이어가는 조선 시대에서는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생각은 반역으로 몰리기에 충분했다. 정여립의 주장은 힘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았다. 신분의 구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 ‘대동’을 꿈꾸었고, 양반과 노비가 함께 어우러진 대동계를 만들어 일본군을 물리치기도 하지만 사병 집단이 반란군이 될 수도 있다는 선조의 의심 아래 결국 정여립은 자결하고 만다. 정여립 사건은 서인이 주도적으로 조사했는데, 이때 반대파인 동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숙청된 사람이 천 명이 넘는다고 하니, 정여립에 대한 평가가 갈릴 만도 하다. 하지만 그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는 사실만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착찹했다.

허균의 마지막 말 ‘할 말이 있다’를 듣고 순간 익숙한 말이어서 내 책장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할 말이 있다』라는 허균의 책이 있었고, 이미 읽고 리뷰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허난설헌의 동생으로만 알고 있었던 허균 덕분에 신분차별의 안타까움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지배층에 커트라인을 두고자 첩의 소생을 서자, 얼자로 구분하고 배제하면서 ‘인재가 없다’라고 한탄하는 것에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제우 역시 하늘 아래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동학을 만들어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사상 역시 과정과 결과의 방향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신분 차별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분제 만큼이나 백성을 힘들게 했던 건 세금이었다. 그렇기에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김육의 간절함은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이런 마음을 지도자가 갖고 적극적으로 이행해 주면 좋으련만! 공납의 폐해를 안타까워하며 죽기 직전까지도 대동법 시행을 위해 애썼지만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혔다. 또한 상공업의 중요성 주장했고 수레와 화폐 사용을 위해 노력했지만 사대부들의 인신공격만 있을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는 정치인들이 많아 고달픈 건 백성뿐이라는 걸 더 실감하게 되었다.

성리학을 중요시하는 조선에서 주자의 《중용》을 윤휴가 다르게 해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송시열과 사이가 벌어지고, 두 차례의 예송 논쟁을 통해 둘의 사이가 완전히 벌어진다. 또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청의 풍물과 제도를 자세히 묘사하고,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문체로 자신의 생각을 과감히 드러냈으며 성리학적 고전 문체에 반한다는 이유로 ‘바른 글’을 지어 올리는 처분을 내린 정조. 그런 정조를 ‘우리 임금님은 너무 바른 게 문제야. 이제 문체까지 바르게 하라고 하시네.’ 라며 흉을 보는 모습에 풋 웃음이 났다. 정조가 막으려 했던 패관소품 문체는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고 나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토지 제도 개혁을 위해 무려 18년 동안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이 주장한 균전제와 인재 선발 제도를 보면 정말 앞서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교육 제도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 인재 선발 과정을 보면 과거제의 폐단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든든한 인재가 많아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생각이 실행되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7명의 개혁가 이야기를 만나면서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개혁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사회 문제를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물론 올바르지 않은 개혁으로 인해 사회가 오히려 도태되는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사회구성원이 함께 올바른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논의하고 함께 참여한다면 진정한 개혁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참여를 미루지 말고 나부터 사회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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