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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보이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2
사소 요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상 파울은 인생은 한권의 책과 같아서 현명한 이는 책을 읽을 때 한번에 열심히 읽는다고 했다.
인생도 단 한번만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을 책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자면, 책을 한번 읽고 덮어 버리는게 대부분이지만 의심이 나면 한번 더 읽고 기억하고 싶으면 또 읽고 그런 식으로 책을 자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 파울의 인생관에 비추어 한번에 최대한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한다.
그랬기에 내가 두번 읽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을 두번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장황하게 늘어 놓어 버렸는데 두번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 책에서는 존재했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반전 때문이였다.
뒷통수가 얼얼하고 모든것이 꼬여 버려 한번 더 읽었던 것인데 옮긴이도 의구심이 들었던 책 속의 메일 내용 때문에 두번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메일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는데 한번 읽다가 놓쳐 버린 세세함은 챙길 수 있었을지 몰라도 처음 읽었을 때의 스릴감은 두번째 읽기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도쿄에서 깡촌으로 전학을 가게 된 히로시 유를 통해 펼쳐지는 시골의 모습은 순간순간이 유쾌할 수 밖에 없었다.
유에게는 끔찍하겠지만 대도시에서 살다 온 시각으로 묘사되는 시골은 재미났다.
가령 도보 30분 거리의 학교가 집이랑 가까워서 좋겠다는 둥, 멧돼지 조심이라는 간판이 당연하게 보이고 6시에 버스가 끊기는 현실은 유에게 최악이였다.
그건 것들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한다 치더라도 전학간 분교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정말 최고였다. 예쁜 여학생에게 홀딱 반해있던 찰나, 산촌 유학생에다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유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킥킥대며 웃음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유와는 달리 유쾌함으로 점철되던 책에 대한 나의 예상은 서서히 빗나가고 있었다.
외국에 계시는 아빠, 홀로 계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유는 할아버지가 계신 곳 즉, 아빠의 고향으로 이사왔지만 유는 아빠의 고향에서 적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는 유가 아빠의 고향에서 자연을 느끼며 지금껏 지내왔던 곳과는 다른 생활을 만끽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에게 보내는 메일은 여전히 적응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학교의 독특한 친구들과도 잘 지낼 의향도 없고 자신의 생각하는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날까봐 전전긍긍 할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유의 비밀이 드러내고 만다.
유도 알고 있었고 유의 학급 친구들도 알고 있었던 아빠의 죽음.
아빠가 아무리 바빠도 요즘 같은 시대에 전화 한통 없이 늦은 답장을 보낸다는 것과 차분하게 유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는 내용이 의심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유가 스스로 보낸 대필 메일이였다.
그 사실에 멍해져 책을 두번 읽게 된 것이다.
아빠에게 쓰는 메일이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쓴느 메일같은 내용에 아빠에 대한 끈적한(?) 그리움은 드물었기에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그랬기에 다시 한번 책을 읽어 보니 옮긴이의 말처럼 메일속의 유는 이미 아빠의 고향에 마음을 열고 있었고 친구들에게도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다니기도 싫었고 한편으로는 싹 무시할 수가 없어서 적절히 꾸민 유의 연극은 마음도 아팠고 씩씩해 보이기도 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생각했떤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유만의 방식을 삶을 가꾸어가는 모습은 성장소설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 정체성이 혼란할때의 청소년기에 자신에게 닥친 변화는 낯설고 유쾌하진 않지만 적응해 가는 모습,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낙오자가 아니라는 사실,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서 흠이 난게 아니라는 사실들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좀더 풍부하게 가꿀 가능성을 말이다.
더군다나 아빠의 고향에서 펼쳐진 것들이라 묘한 감흥이 일기도 했다.
유는 유지만 어린 아빠 히로시의 추억 속으로 빨려 가는 느낌이랄까.
그건 아빠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는 잘해가고 있다.
그의 마음이 좀 더 열리길 바래본다. 유의 인생은 유의 것이므로.